창작(자작)

말딸) "트레이너, 사이클 선수였다고?" (괴문서)

by 얼빠진소DazedbulL posted Aug 0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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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하자면, 말딸들은 자전거와 그닥 연이 없다.

이유는 첫째, 실용성의 이유이다.
생활 속에서 자전거란, 가벼운 힘 만으로도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것을 돕는 도구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 기준이다.
자전거를 '가볍게 밟아' 나오는 속도 정도는, 말딸 입장에선 '가볍게 뛰는' 것 만으로도 가뿐이 뛰어넘을 수 있다.
물론 말딸이 패달을 진심으로 밟으면 어마어마한 속도가 나오겠지만,
그 정도 속도는 인도에서 달리면 안되는 속도인데다가, 그 속도를 위해 온 힘을 쓰느니 차라리 말딸도 차를 타는 게 편하다.

두 번째 이유로는, 심리적인 요인이 있다.
말딸들이 자전거를 타고 내놓는 감상은 공통적으로, "갑갑하다"이다.
말딸들이 자전거를 타는 건 마치, 양 손이 멀쩡한 사람이 집게 만을 이용해서 종이접기를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 한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심리적인 장벽이 자전거와 말딸 사이를 가로막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말딸들은 자전거라는 세계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뭐? 트레이너, 사이클 선수였다고?"
다이와 스칼렛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트레이너의 이전 경력에 대해 듣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말이다.
"야, 선수까진 아니었다니까."
"뭔 소리야, 너 대회도 나갔었잖아. 그럼 선수지."
다스카의 트레이너가 손사레 치며 부정하는 것을, 그의 동료가 반박하며 다시 말을 이어나간다.
"얘가 동기들 중에선 가장 빨라서, 학년 대표로 아마추어 대회도 나가고 했었거든."
학창 시절, 처음부터 말딸 트레이너가 꿈이던 그는, 어쩌면 말딸들의 시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사이클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했었다는 것이다.
나름 좋은 기록 덕에 학년 대표로도 출전했고, 한 번은 입상도 했던 그였지만, 그래도 꿈이었던 말딸 트레이닝에 집중하기 위해 사이클을 접은지 이미 한참이다.
"헤에- 그런거였구나아-"
다스카는 슬쩍 트레이너의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항상 헐렁한 바지만 입는 그였기에 잘 눈에 띄진 않지만, 이따금 옷 위로 드러나는 트레이너의 두꺼운 허벅지를 다스카는 멍하니 보곤 했다. 오늘 그 근육의 비밀이 밝혀졌다.
"뭐, 사이클을 탔던건 사실이지만, 이미 옛날 일이야. 지금 자전거 탄대도 옛날 만큼 탈 수 있을 거 같지도 않고. 뭣보다 난 스칼렛의 트레이닝에 모든 걸 집중하고 있으니..."
"보고 싶어."
트레이너의 말을 끊어버리며, 다스카는 눈을 빛낸다.
"어?"
"네가 사이클 타는 모습, 보고 싶어!"
"...어째서?"

어째서일까. 말딸은 탈 일 없는 자전거를 인간이 타는 모습이 궁금해서일까. 자신이 독점하던 남성의 몰랐던 이면을 눈에 새겨두고 싶어서일까. 트레이너의 그 두꺼운 허벅지가 힘을 내는 모습에 육감적인 흥미가 생겨서일까. 그저 트레이너가 빠르게 움직이는 게 보고 싶어서일까.
난색을 표하는 트레이너를 상대로, 다스카는 무작정 사이클을 타는 모습이 보고 싶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자전거가 없는 거냐. 없으면 당장 한 대 마련하겠다. 정 보여주기 싫으면 예전 영상이라도 없느냐. 없다면 잠깐이라도 타주면 안 되겠느냐. 보여주면 정말 열심히 트레이닝 해주겠다. 안 보여주면 땡땡이 기질을 띄워버리겠다는 둥, 다스카의 고집은 분 단위로 심해져갔다.
"말딸의 시점을 느끼고 싶었다며? 내가 트레이닝 하는 옆에서 같이 달릴 수 있게 해주겠다니까?"
제 말딸 이기는 트레이너 없다고 하던가, 결국 트레이너는 "내일 찾아서 가져올게"라는 약속을 남기고 말았다.
"대신 내일 트레이닝 메뉴 열심히 하기다?"

다음날, 트레센의 운동장엔 드문 손님이 등장했다. 트레이너가 자택 창고에서 꺼내온, 먼지가 차마 덜 털린 선수용 사이클. 휘어진 핸들에 얇은 바퀴가 인상적인 그 모습 옆으로, 평소보다 훨씬 달라붙는 활동복을 입은 트레이너가 있었다.
그의 허벅지 근육이 선명히 드러나는 복장에 다스카 뿐 아니라 주변 말딸들도 눈에 띄게 술렁이고 있었다.
"복장... 진심이구나, 너."
"어중간한 준비로 탔다간 사고나기 쉽상이거든. 우리 인간 몸은 약하단 말야."
트레이너는 다스카가, 자신이 쓰고있는 헬멧에 대해 이야기 하는 줄 알고 답했다. 그도 그럴게 그는 딱히 사이클용 복장을 입은 게 아니라 그저 달라붙는 체육복을 입었을 뿐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스카의 눈은 이미 허벅지 위로 올라갈 생각이 없었다.
"자! 약속은 약속이지, 오늘은 달리기다!"

그렇게 시작된 트레이닝. 하지만 오늘은 평소와 다르다.
평소엔 트레이너가 지시하고, 그대로 다스카가 뛴다. 한 바퀴 돌고나면 트레이너는 그 자리에 그대로 가만히 서있다. 트레이너를 몇 번 지나쳤는가로 몇 바퀴를 돌았는가 셀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트레이너가, 옆에 있었다. 비록 코스 울타리 안 쪽이었지만, 트레이너는 자전거를 몰고 다스카와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자전거에 탔다곤 하지만 말딸과 비슷한 속도로 달리는 트레이너. 그 모습에 다스카는 살짝 넋을 놓고 말았다. 주변의 말딸들도 그 희귀한 모습에 시선을 집중했고, 그런 주목에 트레이너는 부끄러워 하면서도, 자신이 할 일을 다하기로 했다.
"평소보다 느리잖아! 더 빨리!"
트레이너의 지시 때문인가, 아니면 왠지 모르게 달아오르는 몸 때문인가, 다스카는 더욱 박차를 가하고 달려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트레이너는 일생일대의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학창시절의 열정과 속력에 대한 매혹이 되살아나, 허리를 높이고 몸을 낮추어, 진심으로 패달을 밟고 말았다.
전문 사이클 선수들의 일반적인 최고 속도는 약 60km/h 후반, 70km/h에 육박하는 말딸의 스퍼트에 도달하는 수준이다.
직선에서 앞서 나가던 다스카를, 트레이너는 코너에서 따라잡고 말았다.
그것이 실수였다.

멀리서 구경하던 다른 말딸들의 눈에 두 남녀가 나란히 달리는 그 모습은, 드넓은 초원을 달리는 암컷을 수컷이 뒤쫓아 달리는 치타의 구애법과 겹쳐 보였다.
멀리서 보던 말딸들의 눈에도 그럴진데, 다스카에겐 어땠겠는가?
마치 네발 짐승처럼 몸을 수평으로 낮추고 패달을 밟는 트레이너의 모습. 엄청난 속도로 내달리는 터질듯한 허벅지 근육. 그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가공할 순간 가속.
트레이너가 다스카를 따라잡은 순간, 다스카의 눈에 트레이너는 더 이상 연약한 인간 남성이 아니었다.
자신의 옆을 나란히 달릴 수 있는 수컷이었다.

순식간이었다.
다스카는 코스 울타리를 박차고 뛰어넘어, 그 속도 그대로 트레이너를 덮치고 말았다.
훗날 트레이너가 회고하길, 헬멧이 없으면 즉사였을 충돌이었다.
헬멧은 즉사했지만.

그 날 수많은 말딸들 앞에서 다스카는 그 어디에도 보기 힘들 격렬한 우마뾰이를 저지르고 말았다.
다스카는 크리스마스 선물 포장을 뜯는 아이처럼 트레이너의 옷을 모조리 찢어버렸다. 바지 중 허벅지를 감싸는 부분만을 제외하고. 그러곤 흡사 3시간 굶은 오구리 캡처럼 눈 앞의 수컷을 거칠게 탐식했다.
고속의 충돌 때문에 부러진 다리와 갈비뼈, 중장비처럼 조여오는 다스카의 애무, 포식자처럼 살기를 두른 다스카의 눈빛... 짐승같은 우마뾰이가 빚어내는 트레이너의 신음은 트레센 운동장에 아름답게 울려퍼졌다.

훗날 '자전거 구애 사건'으로 회자되는 이 사건 이후 트레센에는 두 가지 변화가 생겼다.
하나는 "트레이너가 자전거를 탄 경우는 명백한 우마뾰이 합의이다"라는 트레센 법정의 판례가 기록된 사실이다. 사실상 '트레센 내 자전거 금지령'과 다를 바 없지만.

그리고, 말딸끼리 암암리에 공유되는 '우마허브'에 사이클 경주, 경륜 등의 검색 키워드가 항상 상위권을 기록하게 된 것이다.
개중에는 '자전거 구애 사건' 당시의 영상 기록도 찾을 수 있다는 도시전설도 전해져 온다.

트레센 학원은 오늘도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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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마무스메 세계에 자전거는 어떤 역할일까 하고 생각하다가
어쩌다보니 괴문서까지 쓰게 됐네

내가 뭘 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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