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신문) “을사조약은 무효” 고종 친서 발견 (1993.10.24 동아)
“을사조약은 무효”
고종 친서 발견
“위협-강압으로 체결… 결코 응낙 않는다”
한-영문으로 작성
美 등 9개국에 발송 계획
서울대 김기석(金基奭) 교수, 컬럼비아대 도서관서 확인
【뉴욕=김차웅(金次雄)】 1905년 대한제국과 일본간의 을사보호조약은 국제법적으로 무효임을 성언한 고종황제의 친서가 작성된지 87년만에 처음으로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학의 귀중도서 및 수고(手稿) 도서관에서 발견됐다. (5면에 관련기사)
가로 30㎝ 세로 40㎝ 정도 크기의 이 고종 친서는 을사보호조약이 강제 체결(1905년 11월)된지 7개월 뒤인 1906년 6월 22일에 일본과 청국을 제외한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탈리아, 벨기에 등 9개국 국가원수들에게 발송하기 위해 작성된 것으로, 최근 서울대 김기석(金基奭) 교수(45·서울대 교육학과·미 하버드대 한국학 연구소 파견 중)에 의해 발굴됐다.
한 장의 종이에 상반부는 한문으로 하반부는 그 내용을 번역한 영문으로 돼 있는 이 친서에서 고종은 첫째, 이 을사조약이 위협과 강제에 의한 조약인 「늑약」(勒約)이며 둘째, 자신이 황제로서 정부에 조약체결을 허가한 적이 없으며 셋째, 소위 정부회의는 국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 대신들을 강제로 가둔 채 이루어진 회의이므로 을사조약은 당연히 불법이며 무효라고 지적했다.
고종은 친서에서 「짐은 어떤 경우에도 결단코 이 조약을 응낙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그러므로 어떤 나라가 짐이 이 조약을 응낙했다는 주장하는 일이 있더라도 원컨대 믿지도 듣지도 말고 그것이 근거없는 일임을 알아주기 바란다」고 간절히 호소하고 있다. 고종은 또 「이같은 불의를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 공판소에 공판을 부치겠다」고 밝혔다.
고종은 당시 미국인 교육자 호머 B. 헐버트를 특사로 임명, 특사임명장을 주고 이 친서 9통을 열강들의 국가원수들에게 전할 것을 명령했으나 그 후 고종의 강제퇴위로 결국 각국 원수들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컬럼비아대 도서관에 맡겨졌었다.
김 교수는 『이 친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어떤 문서들보다도 가장 확실하게 을사늑약이 불법이며 무효임을 밝혀주는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서울대 신용하(愼鏞廈) 교수는 『지금까지 국내 학계에서는 고종의 친서가 있다고는 알고 있었으나 그 원본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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