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긴글주의] 'Wish you were here'를 들으니 생각나는, 내 삶의 터닝포인트가 됐던 사건

by 잉여고삼이강민 posted Sep 0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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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한 2019년 1월 3일.

 그 때 나는 2주가 넘도록 내 연락에 아무 반응이 없던 친구 서아무개가 우리 집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기대에 벅차 있었다. 오랜만에 친구 얼굴을 보게 되니 기쁘기도 했거니와, 왜 2주동안 연락에 반응이 없었는지를 물어볼 기회가 드디어 찾아온 것 같아서 매우 설랬다.

 그래서 나는 옷까지 정장으로 쫙 빼 입고 서아무개가 오기를 기다렸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우리 집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기쁜 마음을 간신히 주체하며 문을 열자 모습을 보인 건 서아무개가 아닌 박아무개였다.

 그 때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인터넷에 도는 무한도전 짤처럼 "네가 왜 거기서 나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간신히 참았다.

 그런데 진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박아무개는 서아무개랑 영상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박아무개가 우리 집에 도착했다고 말을 하자 서아무개가 화면을 바꾸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박아무개는 핸드폰 전면 카메라가 날 향하게 했고, 서아무개는 이천역에서 나에게 중대 발표를 했다.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내가 그동안 너의 연락에 아무 답도 안 한 건 일부러 그런 것이었고, 너는 그동안 나에게 선을 넘은 집착을 해 왔기에, 너와 나는 오늘부로 더 이상 친구 관계가 아니다. 잘 먹고 잘 살아라."

 그렇게 영상 통화는 끊어졌고, 박아무개는 집으로 돌아갔다.

 

 현관문이 닫히고, 나는 두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마치 머리를 뭘로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것마냥 처음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현실을 자각하게 됐고, 나는 나 혼자 서럽게 울었다. 온갖 슬프고 부정적인 감정은 다 들었다. 슬픔, 당혹, 절망, 배신감……. 내가 뭘 잘못했길래? 중학교 때부터 쌓아온 우정이 이렇게 허무하게 와르르르 무너지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너무 울어서 눈물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지경에 이르자, 나는 아파트 꼭대기층으로 올라가 복도 창문을 열었다. 뛰어내릴 생각으로. 그런데 막상 아래를 보니까 없던 고소공포증이 생기는 것 같았다. 그래서 투신은 접어뒀다. 그런 다음엔 넥타이로 목을 매달 생각도 했지만 이것도 접어뒀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을 진지하게 하는 지경이 되고, 그걸 실행으로 옮길 생각까지 하는 지경이 되자 문득 나에게 필요한 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게 아닌 정신과 상담을 받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정기적으로 정신과를 정기적으로 다니고 있었고, 약도 처방받아 먹고 있었다.(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하느님 맙소사! 그 날은 날 상담해 주는 의사선생님이 진료를 쉬는 요일이었다. 어떻게 하지? 내일을 마냥 기다리기엔 내 감정을 내가 걷잡을 수 없는데?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마포대교에 설치돼 있다는 생명의 전화가 생각났다. 생명의 전화 상담원들은 내 편이 되어줄 것 같았다. 답 없는 내 처지에 내려온 유이한 동앗줄 같았다. 그래서 나는, 저녁도 먹지 않고 그 길로 고속버스 표를 끊고 서울로 갔다. 부모님에게 말도 하지 않고.

 고속터미널에 도착한 나는 9호선을 타고 여의도역으로 갔다. 그리고 5호선으로 환승해 마포역까지 갔다. 마포대교에 있는 생명의 전화를 쓰기 위해서였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마포역이 아니라 여의나루역에서 내렸어야 했다. 그 역이 마포대교 바로 뒤에 붙어 있으니까. 그만큼 나는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다.

 마포대교에 도착한 나는 생명의 전화를 찾아 걷고 또 걸었다. 그 땐 다리 난간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는데, 그 글귀들을 보니까 애써 참았던 눈물이 또 터져나오려고 했다. 얼마 걷다가 드디어 그 유명한 생명의 전화 앞에 섰다. 처음엔 잠깐 망설였지만, 그래도 기왕 여기까지 왔는데 해야 할 일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 수화기를 들고 상담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나는 상담원에게, 또 다시 눈물 콧물 질질 짜며, 내가 그날 겪은 일을 하소연했다. 울면서 하소연을 하닥 문득 다리 난간 사이로 소방 고무 보트가 지나가는 게 보였고, 얼마 있다가 소방관과 경찰관들이 내가 있는 곳으로 출동했다. 경찰관들은 날 진정시키며, 상담원에게 상황 종료되었고 나를 지구대로 인계하겠다고 통보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지구대로 인계된 나는 경찰관에게 부모님 전화번호를 알려드렸고, 한 2~30분을 기다렸나, 경찰관의 전화를 받은 부모님이 급하게 차를 몰고 지구대로 오셨다. 부모님은 상황이 종료되었으니 나를 인계한다는 서류에 서명을 하고 나를 데리고 지구대 밖으로 나왔다. 상황이 다 끝나자 이제야 허기가 밀려들어왔고, 부모님은 바로 근처에 있던 설렁탕집에 데려가 설렁탕 한 그릇을 시켜줬다. 그 때 먹은 설렁탕 맛이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다. 설렁탕을 배불리 다 먹은 나에게 아버지가 날 위로하기 위해 5만 원이라는 거금을 내게 용돈으로 주셨고, 그렇게 나는 부모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몇 년동안은 이 일이 있지도 않았던 것마냥 지냈다. 정확히 말하면 떠올리지 않으려고 부던히도 애썼다. 그렇지만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이를 되돌릴 방법은 전무하니 그냥 그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무 감정을 갖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 일을 받아들이는 훈련을 했고, 그 결과 이제는 그 일을 최대한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고. 두 평행선이 어쩌다가 잠깐 교차하게 된 것 뿐이라고.

 

 그래도 가끔 서아무개가 어디서 뭐하며 지내는지 궁금하긴 하다. 세 끼는 꼬박꼬박 챙겨먹는지, 아직도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살아는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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