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와 나치 모두에 저항했던 한국인.jpg
그 주인공은 동물학자, 작가인
이미륵 박사(위 짤, 1899~1950).
독일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수록된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의 저자로 유명하다.
1899년 대한제국 황해도 해주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1919년 경성의학전문학교 재학 중
3.1 운동이 일어나자 여기에 참여하고
대한청년외교단에 들어가 활동하다가
일제에 발각되어 쫓기게 되자
같은 해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일을 돕던 중
1920년 독일로 건너갔다.
이후 1921년부터 뷔르츠부르크 대학교와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다가
1925년 뮌헨 대학교에서 전과해
동물학과 철학을 전공,
1928년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미륵 박사는 학위를 취득한 후
1931년 '하늘의 천사'를 시작으로
한국을 배경으로 삼은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단편 소설을
신문과 잡지에 독일어로 발표하며
작가로 활동했다.
1931년이라는 연도에서 짐작했겠지만
그로부터 2년 뒤인 1933년
수권법이 제정되고
다시 1년 뒤인 1934년
아돌프 히틀러가 총통이 되면서
나치 독일이 등장,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에
독일이 휩싸이면서
이미륵 박사 또한 그 여파를 받게 된다.
뮌헨 대학교에 재학하던
한스 숄과 조피 숄 남매를 비롯해
알렉산더 슈모렐, 빌리 그라프,
크리스토프 프롭스트 등 대학생들과
이들을 지도하던 쿠르트 후버 교수가
1941년 백장미단을 결성해
나치 독일이 저지르는 악행에 맞서
독일 국민들이 궐기할 것을 촉구하는
반나치 활동을 하던 중
1943년 2월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단두대에서 처형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나치는 백장미단 단원뿐만이 아니라
가족과 친구들까지 연좌제로 탄압해
이들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도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쿠르트 후버 교수(위 짤)의 경우
그의 친구 중 하나였던 음악가 카를 오르프
(칸타타 '카르미나 부라나'의 작곡가)에게
후버 교수의 아내가 손을 좀 써달라며 애원했지만
비록 친나치 인사는 아니었으나
나치의 음악적 성향과 맞아떨어져
나치로부터 유무형의 혜택을 받았던 오르프는
이 부탁을 거절하고
이후 연좌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던
후버 교수 가족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후버 교수의 또 다른 친구 중 하나였던 이미륵 박사는
카를 오르프와 상반된 모습을 보여준다.
평소 후버 교수를 비롯해
반나치 운동가이자 언어학자였던
프란츠 티어펠더 교수와 함께 셋이 모여서
나치를 비판했던 이미륵 박사는
친구가 단두대의 이슬로 유명을 달리하자
'우리 시대의 가장 고귀한 인간을 잃었다'며 탄식했고,
후버 교수의 친구였기 때문에
본인은 물론 그 가족 역시 나치의 감시를 받으며
전시 배급이 후순위로 밀린 상황 속에서도
어렵사리 배급받은 물자를
후버 교수의 가족에게 나누어 주는 등
자기 또한 녹록치 않은 와중에
나치 독일이 연합국에 항복하는 날까지
후버 교수의 가족을 돌봤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백장미단의 활동이 재평가되면서
이들을 추모하는 움직임이 활성화됨에 따라
당시 독일인들도 나 살자며 외면했던
후버 교수의 가족을 끝까지 돌봤던
외국인 이미륵 박사도 재조명되어
2019년 뮌헨 쿠르트 후버 거리에
이미륵 박사 기념동판이 제막되었다.
동판 아래에는
이미륵 박사가 생전에 자주 했던 말인
"사랑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에게는
가시동산이 장미동산이 되리라"가
한국어와 독일어 두 언어로 병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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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인에 반나치 운동한 사람이면 당시 독일에서 버티기 힘들었을텐데 남을 위할 수 있다는 게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