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수비오 화산재에 파묻힌 파피루스 두루마리 근황.news
출처 | https://v.daum.net/v/202310131330167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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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만에 있는
고대 로마의 도시
헤르쿨라네움(Herculaneum).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화산이 분화하면서
폼페이가 화산쇄설류와 화산재로 매몰될 때
인근의 헤르쿨라네움도 함께 사라졌다.
지금도 그렇지만 고대에도
나폴리 만은 휴양지로 유명해
권력자와 부유층의 저택과 별장이 즐비했는데
그 중에서도 헤르쿨라네움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화려한 곳은
파피루스 저택(Villa dei Papiri)이라 이름 붙여진,
로마의 군인이자 정치가였던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장인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가
소유주로 알려진 호화 저택이다.
미국의 억만장자 J. 폴 게티가
자신이 수집한 그리스 로마 유물 컬렉션을 전시하려고
말리부 해안 동쪽에 미술관을 지을 때
파피루스 저택을 본떴을 정도였는데,
이처럼 파피루스 저택이 유명했던 이유는...
저택 내부의 개인도서관에서
소유주가 수집한
파피루스 두루마리 장서 1,800여 개가
1750년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떤 형태의 도서이든 간에
책은 매우 비싸서
어지간한 재력이 아니고서는
장서를 수집하는 게 쉽지 않았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처럼
국가가 앞장서서 책을 긁어모아
역사에 남은 도서관도 있었지만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는 시기에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파괴되었으며
보관하던 장서들도 불타거나 뿔뿔이 흩어져
수세기에 걸쳐 베껴 적은 필사본으로
내용이나마 전해지는 일부 도서를 제외하면
상당수는 제목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상태라
화산재의 열기로 숯덩이처럼 검게 그을렸을지라도
필사본이 아닌 로마 시대 당대의
장서 원본이 살아남은 도서관은
파피루스 저택의 개인도서관이 유일했다.
이처럼 파피루스 저택에서 발견된
'헤르쿨라네움 파피루스'의 가치가 어마어마했기에
발굴 당시부터 어떻게든 내용을 읽어보려는 시도가 있었고,
그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것은
1756년 바티칸 도서관에서 고대 사본 보존에 종사한
안토니오 피아지오 신부가 발명한 위 기계였다.
두루마리 끝에 비단실을 매단 후
하루에 밀리미터 단위로 조금씩 펴는 방식이었는데
첫 번째 두루마리를 완전히 펼치기까지
총 4년이 걸렸다.
피아지오 신부의 방식은
두루마리의 시작과 끝부분이 훼손될 가능성이 컸고
탄화되어 외부의 충격에 약한 파피루스가
조각나서 부서지는 단점이 있었으나
적어도 문자 해독은 가능해
그나마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그 밖에도 헤르쿨라네움 파피루스를 열어보려고
두루마리를 반으로 자르는가 하면
온갖 화학약품이나 가스를 사용하는 통에
수백여 개의 두루마리가 파괴되어
1,800여 개의 두루마리 중
완전하게 펼쳐진 건 약 600여 개,
부분적으로 펼쳐진 건 약 200여 개,
그 중에서 문자가 해독된 건 약 150여 개에 그쳤다.
더 이상의 훼손을 막기 위해
19세기 후반부터 작업이 중단된 채
남겨진 600여 개의 두루마리들은
100여 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던 중...
2000년대에 들어와서
CT 촬영으로 스캔해
3D로 디지털화하면
두루마리를 펴지 않고도
원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등장하고
여기에 더해 다중 스펙트럼 화상으로
파피루스에 묻은 잉크의 성분을
판별하는 방법이 결합되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실제로 2015년 미국 켄터키 대학교의
브렌트 실즈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이스라엘 사해 근처에서 발견된 엔게디 두루마리를
앞서 언급한 기술들을 사용해서
펼쳐지 않고도 그 내용을 읽어내
성경의 레위기 구절이 쓰여졌음을 밝혀낸 바 있었다.
하지만 헤르쿨라네움 파피루스의 경우
잉크에 금속 성분이 포함된 엔게디 두루마리와 달리
목탄에 물을 섞은 탄소 기반 잉크여서
탄화된 파피루스와 별반 차이가 없는지라
다중 스펙트럼 화상으로는 잉크를 인식할 수 없었다.
2019년, 실즈 교수의 연구팀은
잉크가 파피루스에 묻을 때
파피루스 표면 조직에 발생했을
미세한 변화로 포착하려고
입자가속기를 사용해서
보존 상태가 양호한 두루마리 2개에 대해
초고해상도의 3D X선 스캔을 실시한 다음
스캐닝된 이미지를 AI에 기계학습 알고리즘으로 훈련시켰다.
마침내 2023년,
실즈 교수의 연구팀은 2개의 두루마리에서 얻어낸
모든 스캐닝 자료와 코드를 일반에 공개하고
2023년이 지나기 전에
파피루스 안쪽에 적힌 내용을 해독하는 사람/팀에게
15만 달러(약 2억 원)의 상금을,
파피루스에 묻은 잉크를 감지하기만 해도
5만 달러(약 6,700만 원)의 상금을,
그 밖에 기술을 개선하는 등
각자 이뤄낸 성과에 따라 상금을 수여하는
'베수비오 챌린지'가
실리콘밸리 IT 기업들의 후원으로 개최되었다.
전세계의 개인과 기관들이
파피루스 해독을 위해 참여하는 동안
2023년 4월 14일
해독을 위한 기술 개선에 공헌한
4명/팀에게 각 2,500달러씩
총 1만 달러의 상금이,
2023년 6월 27일
잉크 감지를 위해 개선된 기술을 적용한
7명/팀에게 5,000~1만 달러씩
총 4만 5천 달러의 상금이,
2023년 7월 14일
잉크 감지를 위해 개선된 기술을 적용한
10명/팀에게 5,000~2만 5,000달러씩
총 10만 달러의 상금이,
2023년 9월 8일
잉크 감지를 위해 개선된 기술을 적용한
6명/팀에게 1,500~3,000달러씩
총 1만 2천 달러의 상금이,
2023년 10월 3일
해독을 위해 보다 어려운 세분화 작업을 한
6명/팀에게 5,000~1만 달러씩
총 4만 5천 달러의 상금이 수여되었고...
2023년 10월 12일
실즈 교수의 연구팀에 참여한
루크 패리터, 유제프 네이더 두 학생이
보라색을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
'πορφύραc(포르피라스)'를
파피루스에서 처음으로 해독해
그 중 첫 번째로 성공한 패리터에게 5만 달러,
두 번째로 성공한 네이더에게 1만 달러가 수여되었으며
첫 번째로 잉크를 감지한
케이시 핸드머에게도 1만 달러가 수여되었다.
실즈 교수의 연구팀은
이번에 처음 해독해낸 단어를 토대로
고대 시대에는 보라색이 왕과 황제 등
최고권력자의 전유물이었다는 사실에 착안해
베수비오 챌린지에 제공된 두루마리 중 하나는
왕이나 부귀영화에 대한 내용이
작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번에 고고학계에서
베수비오 챌린지에 주목하는 건
어떤 단어가 됐든 간에
필사본이 아닌 고대의 장서 원본에서
단어 자체를 해독하는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베끼는 과정에서 오탈자가 있었을 필사본이나
필사본조차 남기지 못한 원본들,
재활용되어 다른 도서에 사용된
파피루스 또는 양피지를
물리적으로 건드리지 않고도
원래의 내용 파악이 가능하게 됨으로써
우리가 알지 못했던
고대인들의 지식에 접근하는 계기가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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