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작)

재활글 2

by 야미카 posted Feb 2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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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꿈일거야.’

 

  살면서 28일을 제외한 나머지 인생이 모조리 솔로인 29세 남근철은 생각했다.

 

  [우리 잘 안 맞는 거 같아. 헤어지자.]

 

  난생 처음 사귄 여자친구라 온 정성을 다했는데 한 달만에 이 꼴이 났다. 그 뒤로 매일 같이 술을 달고 살았다. 처음에는 다들 위로의 말을 건냈다. 하지만 일주일째엔 친구가, 한달째엔 부모가 등을 돌렸다. 집에서는 눈치가 보여 밖으로 나돌았다. 오늘도 평소처럼 소주를 빨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필름이 끊긴 것 같다.

 

  “뭐야 저거…?”

 

  처음엔 꿈 속이거나 술이 덜 깬 줄 알았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너무나 생생했다. 휙휙 움직이는 실루엣하며, 바닥과 공원 기물이 박살나는 파열음이 몽롱하던 정신을 현실로 끌고왔다. 하지만 정신이 말짱해질수록 되려 눈을 의심하게 됐다.

 

  “저게 뭐야…?”

 

  뿔과 날개가 달린 거구의 남성과 소년. 두 사람은 검과 창을 들고 싸우고 있었다. 그 여파로 주변이 부서질 정도로 격렬하게 말이다. 알딸딸한 느낌을 즐기며 비현실적인 광경을 멍하니 보고 있던 근철.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부서진 타일 조각이 날아와 그의 팔뚝에 박혔다. 고통은 공포를 불러왔고, 공포는 그에게 현장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아파! 1, 112! 경찰을 불러야 돼!”

 

  그제서야 허둥지둥 신고 하는 근철. 그러든 말든 습격자와 상준의 사투는 점점 격렬해졌다.

 

 

 

  근철은 두 사람이 사력을 다한, 막상막하의 싸움을 하고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 견해는 절반짜리에 불과하다. 양쪽 모두 사력을 다하고 있는 건 맞지만, 누가 승기를 쥐고 있는가는 명확했다.

 

  [기껏 계약까지 했는데 부상자를 상대로 쩔쩔매기 있어?]

 

  “꼬우면 니가 하든가!”

 

  날카로운 일격을 간신히 피한 상준은 소리쳤다. 회피 직후 빙글 돌면서 창을 휘둘렀지만, 상대는 가볍게 흘려보냈다. 이쪽의 공격은 족족 막히고 상대에게 카운터는커녕 피하기도 버겁다. 습격자가 뛰질 못하니까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진작에 승부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스피드의 차이로 버티는 것도 영원할 순 없었다.

 

  “큭…!”

 

  허벅지에서 화끈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지쳤나? 반응이 점점 느려지고 있어.”

  “… 아직 멀었어!”

 

  허세를 부리고 있지만, 상준은 이미 지칠대로 지쳤다. 습격자와 대치한 지 이미 5분을 초과했다. 무술은커녕 운동과도 친하지 않은 저체중 소년에게 있어, 자신을 죽이려 드는 상대와의 사투는 너무나 버거웠다. 신비한 힘에 의해 변신하지 않았다면 그는 이미 싸늘한 시체였을 게 분명했다. 다만 그마저도 끝나간다는 증거가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중이었다.

 

  -깡!

 

  창 날이 부러졌다. 장대가 되어버린 창을 고쳐잡을 틈도 없이 상준의 복부에 꽂힌 발차기. 몽둥이로 맞은 듯한 충격을 느끼며 바닥을 굴렀다. 어떻게든 일어나려 했지만, 등을 짓밟혔다.

 

  “여기까지인 듯 하군. 어려보이는 것 치곤 제법 괜찮았다.”

 

  마무리 짓기 위해 대검을 들어올리는 그를 향해 소년은 외쳤다.

 

  “왜 죽는지나 알고 죽읍시다!”

  “내가 어째서 그런 걸 알려줘야하지?”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곧 죽을 사람 소원 가불해준다고 치고 어떻게 좀….”

 

  [우우~ 꼴이 비굴하다! 엎드려 빌지 말고 서서 싸워라!]

 

  ‘저 여자가 사람 속도 모르고…!’

 

  순간 울컥한 상준이었지만, 어떻게든 감정을 씹어 삼켰다. 그라고 해서 비굴해지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는 납작 엎드려야 한다. 약 10분간 쉴 새 없이 움직였던 탓에 몸은 이미 탈진 직전이었고, 무리해서 공격해본들 통할 것 같지도 않았다. 지금 필요한 건 시간 벌이다. 소년은 일단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했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라…. 이 세계엔 재미있는 말이 있군.”

 

  저 말의 어디가 재밌다는 걸까. 남자는 혼자서 쿡쿡대더니 치켜들었던 대검을 내리며 말했다.

 

  “간만에 재치있는 말을 들었더니 긴장이 풀려버렸다. 이런 일을 하면 좀처럼 웃을 일이 없어서 말이야. 좋아. 한 가지, 딱 한가지 질문에 답해주도록 하지. 내가 답해줄 수 있는 것에 한해서 말이야.”

 

  이게 먹히네. 아무렇게나 던져본 말이 의외의 성과를 거둔 것에 얼떨떨해 하면서도, 기껏 생긴 기회를 살리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상준. 아예 고민하는 척 시간을 끌며 체력을 회복할까 생각도 했지만….

 

  “10초 안에 질문하지 않으면 그냥 죽일거다.”

 

  상대도 바보는 아니었다. 고민하면 할수록 수렁에 빠지는 기분. 결국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하기로 정했다.

 

  “왜, 왜 날 죽이려 하는거죠?”

  “겁 없이 생판 남에게 간섭한 너의 부주의함 때문이지. 질의응답 시간은 끝이다.”

 

  ‘이런 게 어딨어!’

 

  다시금 대검을 들어올리는 습격자를 보며 상준은 절규했다. 죽어라 발버둥 쳐보지만, 남자의 발밑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사형수의 목을 노리는 기요틴처럼 자신을 향해 내리꽂히는 칼날. 소년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아아아악!!”

 

  예상대로 끔찍한 고통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것은 죽음이 아니었다. 상준은 고통에 몸부림칠지언정 살아있었다. 그는 엎질러진 물통처럼 피가 줄줄 새는 상처 부위를 손으로 억눌렀다. 천천히 죽어가는 생명 앞에서 습격자는 말했다.

 

  “아, 이거 맘 약해지네. 난 어린애를 죽이는 건 영 뒷맛이 나쁘단 말이야.”

  “그, 그럼 살려주시면… 안되겠군요.”

 

  한 번 해본 소리였지만, 남자의 살벌한 눈을 본 소년은 빠르게 단념했다.

 

  “좋든 나쁘든 일은 일이지.”

 

  대검에 묻은 피를 닦으며 남자는 말했다.

 

  “곧 죽을 녀석한테 무슨 소용인가 싶다만…. 왜 죽이려 하냐고 물었지? 그 질문에 대한 조금 더 자세한 답변을 주마. 당연히 개인적인 원한 같은 건 없어. 일이니까 하는 것 뿐이지.”

  “어린애를 찔러 죽이는 게 일이라고요?”

  “응? 착각하지마. 너는 그냥 운 나쁘게 추가된 일감일 뿐이야. 이런 일이 대개 그렇지만 의뢰주들은 목격자가 없길 바라거든.”

 

  대검을 요리조리 살펴보며 그는 말을 이었다.

 

  ”네가 접촉한 여자. 넌 모르겠지만, 우리 쪽 세상에선 굉장히 유명인이거든.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많은… 그런거지. 다만, 나 같은 사람한테 쫓기는 걸 보면 알겠지? 개중에는 죽이고 싶을 만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는 거야.”

 

  남자는 대검을 집어 넣더니 새로운 무기를 꺼내 휘둘러 본 뒤 말했다.

 

  “이만하면 충분하지? 이 이상 얘기하면 의뢰주가 누구고, 얼마 받고 하는 일인지까지 나불대야하니까. 슬슬 끝을 내자고.”

  “벌써 끝인가. 아쉽네, 정확히 누가 몇 명이나 개입했는지 듣고 싶었는데. 뭐 오빠랑 언니가 개입한 건 확실하니 둘을 잡아 족치면 되겠지만.”

 

  분위기가 변했다. 아니, 분위기뿐만이 아니었다. 말투도 목소리도 바뀌었다. 습격자는 즉시 흉기를 휘둘렀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펄럭!

 

  빨랫줄에 널기 전 세탁물을 털 때 나는 것과 비슷한 소리. 접혀 있던 날개가, 허리 부분에 접혀있던 그것이 활짝 펼쳐졌다. 겉모양은 박쥐의 것과 흡사했지만, 거대하고 웅장한 날개는 마치 알바트로스 같았다. 하지만 새나 박쥐완 달리 그녀는 땅에서도 위용을 잃지 않았다.

 

  “이건?!”

 

  습격자는 무기를 내리꽂았지만, 칼날이 원하는 곳에 닿는 일은 없었다. 보이지 않는 힘이 밀어내는 것처럼 일정 이상 나아가질 못했다. 순간 당황한 남자였지만, 금세 원인을 알아챘다. 자신을 향해 뿜어져 나오는 마력이 보였다.

 

  “추진력을 이용해 팔을 밀어내다니… 이런 컨트롤은 평소 날개가 있는 생활을 하던 게 아니면 못하는 일이지.”

 

  그가 있던 세계의 몇몇 종족은 제트팩처럼 날개에서 마력을 내뿜어 비행이 가능했다. 100kg이 넘는 근육 덩어리들도 날 수 있게 해줄 정도다. 팔심만으론 못 이기는 게 당연지사. 남자는 나이프를 거둬들이며 말했다.

 

  “결국 어린애의 몸을 뺏은 겁니까. 아리오나 공주님?”

  “어머나? 빼앗다니 누가 들으면 오해할만한 소리 말았으면 하는데.”

  “보이는 게 그렇지 않습니까. 이세계인의 몸을 빼앗는 마법 같은 건 듣도 보도 못했는데 말이죠.”

  “자신이 모르는 걸 없는 셈 치는 건 좋지 않은 버릇이라고 충고해주지.”

  “하하, 새겨 듣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슬슬 마력도 떨어지신 것 같으니 끝을 내보죠.”

  “아닌데? 완전 쌩쌩한데? 하루 종일도 할 수 있어.”

  “그렇습니까? 공기 중에 마나가 전혀 없는데도 그 정도로 버틸 수 있다니… 어디 확인해볼까요!”

 

  얼마나 많은 연습과 실전 경험이 있었던 걸까. 남자가 코트 안에 손을 넣고, 대검을 꺼내 휘두르기는 일련의 과정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오죽했으면 그녀가 눈치 챘을 땐 이미 칼날이 날개를 찢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결국은 봐버린 것이다. 동공에 포착된 순간 반격 당하는 건 필연이라 할 수 있겠다.

 

  -펑!

 

  “컥!”

 

  굉음과 함께 강렬한 충격이 습격자를 덮쳤다. 거구를 하늘 높이 솟구치게 할 정도니, 기절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두 번째이니만큼 그는 재빨리 정신을 차렸지만, 몽롱한 정신으로도 알 수 있었다. 이미 결판이 났다는 것을 말이다.

 

  -펑!

 

  다시 한 번 굉음이 울렸고 아리오나는 날아올랐다. 습격자와 비슷한 높이까지 올라간 그녀는 물었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데미지가 상당한 탓에 겨우겨우 입을 떼는 남자.

 

  “사, 살려….”

  “싫어!”

 

  애초에 들을 맘도 없던 아리오나의 발차기가 복부에 직격했다. 골대를 향해 나아가는 축구공처럼 날아가는 습격자. 하지만 공과 달리 그를 기다리는 건 싸늘한 공원 바닥이었다. 습격자가 완전히 전투 불능이 된 걸 확인한 후 그녀는 지상에 내려왔다.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어이쿠 현기증이.”

 

  이기기는 했지만, 몸 상태는 말 그대로 만신창이. 여기저기 상처가 많지만, 가장 큰 문제는 옆구리였다. 출혈은 어떻게든 막고 있지만, 치료까지 할 여력이 없다. 이 육체 자체가 너무 연약한 것 역시 한몫했다. 온전한 상태였어도 그녀가 전력을 내면 자멸할 것 같은 부실함이었다.

 

  “우리 세계에 있던 인간종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육체는 터무니 없이 약해. 이 아이만 이런건가?”

  “꼬우면 내 몸에서 나가.”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동시에 뿔과 날개도 점점 사라져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상황은 명확했다. 부르기 전까진 무의식 어딘가에서 잠들어 있어야 할 소년이 멋대로 튀어나온 것이다. 아리오나는 놀라서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그녀가 놀라든 말든 상준은 하고 싶은대로 할 뿐이었다.

 

  “아이씨 아파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안 아픈데가 없네. 어라? 이 놈 죽었나? 에이… 살았잖아.”

 

  [너, 너! 대체 언제부터 깨어있었어?]

 

  “네가 내 몸에 대해 불평할 때부터.”

 

  그녀와 상준이 맺은 계약은 말이 계약이지, 한 쪽이 상대방의 종복이 되는 노예 계약이나 저주에 가깝다. 그런데 지금 모습은 무어란 말인가. 한순간에 몸의 주도권을 뺏겨버린 아리오나의 정신적 충격은 상당한 것이었다.

 

 

 

  [여기서 더 있어봤자 나락 간 인생 더 망하기 밖에 더 하냐고! 어차피 죽으려고 했으면서 눈 딱 감고 나랑 새 인생 살아보자니까?!]

 

  “남의 기억 멋대로 읽고 나불대지마! 너의 뭘 믿고 다른 지역도, 나라도 아닌 다른 세계로 넘어가겠냐. 난 남의 뜻대로 움직이는 건 질색이야.”

 

  아리오나는 답답했다. 몇 분이나 설득하고 있지만, 상준은 넘어오지 않았다.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마법을 이용해 강제로 가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안 그래도 차원 이동은 성공률이 낮다. 그런데 그걸 소년과 티격태격하면서 산만한 정신으로 했다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낭패다. 설마 이 몸 안에 갇혀버릴 줄이야….’

 

  어떻게든 상준과 함께 이세계로 가고픈 그녀가 다급해지고 있는 그때,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위용위용!

 

  “쳇, 견찰 떴네.”

 

  멀리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 상준은 인상을 구기더니 재빨리 공원을 벗어나려 했다.

 

  “어라?”

 

  옆구리부터 허벅지를 적시는 따뜻한 무언가. 그건 다름 아닌 자신의 피였다. 다시 시작된 출혈은 시작에 불과했다.

 

  -털썩

 

  몇 걸음 걷지 못하고 상준은 주저앉았다. 어깨, 종아리, 팔뚝 등등… 부상 당한 부위가 쑤시고 아파왔다. 누군가 몸 안에 있는 수도꼭지를 돌려 고통을 쏟아내게 하는 느낌. 상준은 가장 의심되는 인물에게 따져물었다.

 

  “야, 이거, 지금 협박하는거야? 말로 안되니까 폭력으로 해보려고?”

 

  소년의 질문 아닌 질문에 아리오나는 까칠하게 답했다.

 

  [협박? 꼬마야 말은 바로 해야지. 이건 네가 본래 겪었어야 할 것들이었어. 오히려 지금까지 내가 막아주지 않았으면 넌 출혈이랑 고통으로 진작에 죽었어.]

 

  “본래? 본래라니, 너랑 엮이면서 내가 이렇게 된 건데 본래가 어딨어!”

 

  [그래. 베이고, 찔리고, 죽을 뻔 했지. 그래서 살려주고, 습격자도 없애주고, 당장 죽지 않게 해줬잖아. 이젠 더 하고 싶어도 마력이 부족해서 못해줘.]

 

  “마력?”

 

  마력이란 개념이 생소한 상준에게 아리오나는 말했다.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체내 에너지 같은 거야. 이 세계엔 마나가 없어서 온전히 내 힘으로만 마법을 써야하더라. 나한테는 이제 원래 세계로 돌아갈 때 쓸 마력 밖에 안 남았어. 설마 모든 힘을 너한테 쓰고 이 세계에 남으란 소린 아니지?]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으니까 넌 나를 책임져야해! 차마 이런 소릴 할 순 없었다. 입버릇에 비해 거칠지 못한 소년의 심성은 결정을 망설였다. 하지만 흘러가는 시간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여기 꼴이 왜 이래? 거기 학생 여기서 뭐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경찰차에서 내린 경찰 두 명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안 그래도 복잡한 머릿속이 핑핑 도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심리적인 것인지 빈혈 때문인지 분간이 안 갔다.

 

  ‘아 죽겠다.’

 

  여기서 경찰한테 잡히면 어떻게 될까. 일단은 응급실이겠지? 병원비가 없으니 보호자한테 연락이 갈텐데. 그 인간들이 올리는 없고… 귀가조치려나 아니면 가출 청소년 쉼터? 학교에서 피떡 만들고 나왔으니 최악의 경우 소년원에 갈지도. 근데 다음은? 소년원에서 몇 년 썩다 나오면 이제 뭐하지? 또 폐지 모으면서 무료 급식 얻어먹으면서 사는건가.

 

  “갈래.”

 

  [그렇게 설득해도 안 듣더니 무슨 바람이 불어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여기 있는 것보단 나아.”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아리오나가 주문을 외자 상준의 몸이 빛나기 시작했다. 이상함을 느낀 경찰들이 뛰기 시작했지만, 그들이 도착할 즈음엔 소년은 더 이상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다. 잃을 것 없는 소년과 모든 걸 잃은 여자의 여행이 이제 막 시작된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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