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작)

재활글 12

by 야미카 posted May 1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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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홍의 계약과 뉴 라이프




  “얘들아, 가자!”

 

  달과 별이 하늘을 차지한 심야. 본래라면 고요해야 할 시간이건만, 거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미안…!’

 

  나는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소년에게 모래를 집어던지고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달려갔다. 발소리가 들렸다. 모래가 이리저리 튀는 소리도 들렸다. 적어도 열댓 명은 될 것이다. 밤의 장막이 습격자들을 숨겨주어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오로지 그들의 무기만이 섬뜩한 반짝임을 보일 뿐이었다.

 

  “저편, 온 자….”

 

  등 뒤에서 들릴 듯 말듯한 소리가 들렸다. 아마 소년이 무언가 말하는 것 같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앞에서 오는 적을 요격하려는 걸까? 하지만 그건 잘못된 판단이다. 앞에서 요란스럽게 덮치는 건 미끼다. 진짜는 그 틈을 타 뒤에서 다가가고 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어!’

 

  눈을 질끈 감고 내달렸다. 아무것도 보고싶지 않았다. 하지만 눈은 가릴지언정 속마음까지 속일 순 없었다. 살기 위해 남을 사지로 몰았다는 사실은 스스로에 대한 염증을 불러일으켰다. 특히나 이번엔 유독 더 심했다. 그건 아마 소년이 고향에 있는 동생과 비슷했기 때문일거다. 나이대도 그렇지만, 체내에 마력이 없다시피 한 저주 받은 체질인 점이 그랬다.

 

  “윽…!”

 

  무거운 발걸음을 멈춘 나는 제자리에 웅크려 귀를 막았다.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칼이 살을 베고 찌르는 소리며 숨이 끊어지는 소리 같은 건 도저히 적응할 수가 없었다.

 

  -챙!

 

  귀를 막기 직전 들려온 것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다른 것이었다. 쇳덩이가 단단한 것과 부딪혔을 때 나는 소리였다.

 

  “으악!”

 

  잠시 멈칫한 사이 아니나 다를까 비명이 고막을 때렸다. 방금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듯 비명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얼마나 끔찍한 상황일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야, 저게 뭐야!?”

 

  저 앞에서 달려오던 도적들이 내 앞에서 멈춰섰다. 왜 그러나 싶어 고개를 들었는데, 도적들의 안색이 이상하다. 놀란 표정으로 소년이 있는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윽… 눈부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걸까. 참지 못하고 돌아본 나는 눈을 찌푸렸다. 그가 있던 자리엔 반짝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엄청나게 밝은 건 아니었기에 눈은 금새 적응했고, 그것을 똑바로 볼 수 있게 됐다.

 

  “수정?”

 

  아니, 저건 얼음이다. 수정으로 착각할만큼 투명한 얼음이 달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아름답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 속에 사람이 있는 것만 아니라면. 뒤에서 접근하던 도적들이 모조리 제압당했다. 그들은 얼음 속에 갇혀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벌레가 들어간 채 굳은 나무 수액 보석 같았다. 숨겨둔 마도구가 있었던 걸까.

 

  “얘네랑 너희까지 해서 전부냐? 일로 와. 아니다, 거기 있어. 내가 갈테니까.”

 

  말을 마친 소년은 성큼성큼 이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던 도적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소리쳤다.

 

  “어이, 전부 나와!”

 

  그의 호령과 동시에 모래 아래 숨어있던 적들이 정체를 드러냈다. 소년을 포위하듯 둥글게 자리잡고 있는 도적들. 30명은 될 것 같다. 칼을 뽑아든 그들은 일제히 달려들었다.

 

  ‘이번엔 진짜 끝장이야.’

 

  숫자 앞에 장사 없다. 한 둘도 아니고 이만큼 차이가 나면 아무래도 힘들다. 사람을 꽁꽁 얼릴 정도의 성능을 가진 마도구는 값비싸다. 그런 걸 수십 개씩 가지고 다니진 않을테니 이번에야 말로 끝이리라. 역시나 체념한 걸까. 성큼성큼 걸어오던 소년은 제자리에 선 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어디 또 개수작 부려보지 그러냐 꼬맹아!”

 

  도적 중 하나가 들뜬 목소리로 소리쳤다.

 

  ‘악질 새끼들.’

 

  지금 소년을 노리는 놈들은 푸른 냑타라는 요즘 한창 세가 커지는 중인 도적단이다. 언듯 무해할 것 같은 이름과는 달리 난폭한 성향으로 유명한 잡것들이다. 반항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얌전히 항복한 사람도 기분에 따라 죽인다. 노인이고 어린애고 봐주는 것따윈 없다. 도적들에게 둘러싸인 소년을 뒤로한 채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앗, 차가!”

 

  두 걸음이나 걸었을까. 귀가 따끔하더니 등 뒤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귓볼을 매만져 본 나는 의아했다.

 

  “얼음?”

 

  얼음이었다. 내 귓볼엔 자잘한 얼음이 붙어있었다. 손으로 만지니 녹아 물이 되는 게 아니라, 사라지는 걸로 보아 마력으로 만들어진 얼음이었다. 사막의 밤은 매우 춥지만 얼음이 생길 환경은 아니다. 심지어 마력으로 만들어진 얼음이라, 이건 어디서 날아든 걸까. 동상에 걸린 것처럼 차가워진 귓볼을 만지던 나는 놓치고 있던 사실을 문득 떠올렸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소년을 붙잡고 온갖 끔찍한 짓을 하고도 남을 놈들이 너무 조용하다. 나는 설마설마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놈들에게 둘러싸여 소년은 머리카락도 보이지도 않았다. 방금 전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지만 뭔가 이상하다. 도적들이 미동도 하지 않는다. 움직임은커녕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와장창

 

  석상이나 동상이 깨지는 듯한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도적들이 조각조각 부서졌다. 머리, 몸통, 팔다리가 모조리 조각난 모습은 실로 끔찍할 것이다. 이 순간 만큼은 어슴푸레한 달빛에 감사했다.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치는 소년. 혹시 남아 있을 기습을 경계하는 것일테지만, 그의 몸짓에서는 여유가 묻어나왔다. 30초 가량 기다려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소년은 걷기 시작했다.

 

  -퍼석퍼석

 

  그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아마 모래를 덮은 살얼음이 깨지는 것이리라. 짧은 시간이었지만 깊게 생각해본 결과, 나는 자신의 판단이 전제부터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마도구 같은 게 아니었다. 소년은 마법사였고, 심지어 도처에 널린 그저그런 수준도 아니었다.

 

  ‘도망쳐야해!’

 

  그는 산책을 하듯 여유롭게 걸어오고 있다.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 소년에게서 멀어져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내 발은 얼어붙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실제로 얼어붙은 건 아니었다. 한 때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조각난 채 땅바닥에 흩어져 있는 저들을 보고 있자니, 나 역시 같은 꼴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이 몸을 굳게 만든 것이다.

 

  ‘하다 못해 표정이라도 읽을 수 있다면….’

 

  소년은 점점 가까워졌지만, 달을 등지고 있는 터라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다년간 가이드 일을 한 경험으로 타인의 안색을 살피는 일에는 자신이 있었다. 만약 내게 살 길이 있다면 세치 혀를 열심히 굴리는 것 뿐이다. 떨면서도 어떻게든 살기 위한 가능성을 모색했지만, 소년이 바로 앞까지 온 순간 작은 가능성조차 포기했다.

 

  -털썩

 

  나는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이럴거면 안 보이는 쪽이 나았어…. 차라리 분노하고 있었다면, 자만하고 있었다면, 비웃고 있었다면 더 나았을 지도 모른다. 소년의 표정엔 감정이 없었다.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감정의 동요가 없었다. 배신 당하고, 습격 받고, 사람이 죽었는데도 그는 동요하지 않았다.

 

  ‘이제 어쩌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실낱 같은 희망마저 사라진 지금 어떡하면 좋을까. 말없이 가만히 것도 잠시, 소년은 쭈그려 앉더니 천천히 양손을 들어올렸다. 점점 다가오는 손을 보며 생각했다.

 

  ‘나도 저것들처럼 되는 걸까?’

 

  산산이 부서져 고깃덩이가 되는 최후라니… 타인을 희생해 연명한 업보일까. 지금까지 열 명, 이 소년 말고도 다른 여행자를 도적들에게 바쳤었다. 길을 안내 받으려던 사람들을 사지로 밀어넣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상황을….

 

  ‘살고 싶어!’

 

  받아들일 수 없었다. 새하얗던 머릿속이 공포로 얼룩졌다. 눈물이 차오르고 사타구니가 축축해졌다. 그의 손이 얼굴 높이까지 올라왔을 때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코앞까지 다가온 공포를 직시할 수 없었다. 죽음에서 눈을 돌린 그때 소리가 들렸다.

 

  “여, 우… 귀?”

 

  더듬거리는 온전치 못한 말투였지만, 뜻은 전해졌다. 그 순간 나는 손을 들어올려 머리를 더듬었다. 거기엔 쫑긋하고 털이 폭신폭신한 나의 원래 귀가 드러나 있었다.

 

  ‘또야, 또 들켰어….’

 

  당장 죽게 생긴 마당에 무슨 상관이냐 할 수도 있지만, 이건 무엇보다 중요한 사안이다. 다름이 아니라 이따위 상황에 빠진 근본적 원인이었으니까. 그날 내가 요호족이라는 걸 들키지 않았다면, 도적놈들한테 약점 잡힐 일도 없었을테니까. 그랬다면 돈을 상납할 필요도 없고, 목숨을 위협당할 일도 없었을 텐데…!

 

  ‘급하다고 아무나 가이드한 게 실수였을까?’

 

  3일 전, 상납금이 밀려 도적들한테 독촉 당하던 그때 소년을 보았다. 생전 처음 보는 옷을 입은 채, 얼뜨기처럼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던 모습은 눈에 안 띌 수가 없었다. 그런 주제에 전시하듯 마수의 이빨이며 발톱을 주렁주렁 달고 다녀서, 마치 스스로 돈 많은 호구라고 광고하는 것 같았다.

 

  ‘진짜 저 정도로 호구라고?’

 

  몰래 뒤를 밟아본 결과 그는 놀라울 정도로 호구였다. 대충 봐도 3배는 더 받아야 할 것 같은 마수 전리품을 헐값에 넘기더니, 옷이나 식량도 흥정 없이 달라는 대로 지불했다. 많은 호구들을 봐왔지만, 저 정도 수준은 처음이라 되려 의심이 깊어졌다. 아주 가끔씩 일부러 소매치기를 유도하고 붙잡은 뒤, 흠씬 패고 돈을 뺏는 놈들이 있기 때문이다.

 

  ‘맞네, 맞아. 저건 진짜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나는 분신을 만들어 소년의 돈주머니를 낚아채 달아나게 했다. 멍청하게 있다 돈주머니를 뺏긴 것까진 그러려니 했지만, 짐을 들고 뛰다 절로 자빠진 걸 보고 확신했다. 저건 진짜배기다. 호구 중에 상호구, 봉 그 자체다. 몸에서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마침 좋았다. 만에 하나라도 거짓말을 간파 당할 일도 없을테니 말이다.

 

  ‘몸은 비리비리한데 의외로 힘은 좀 쓰나보네?’

 

  보아하니 특별한 장비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마법도 못 쓰면서 맨몸으로 마수를 잡는 괴물일 수도 있다는 것. 입고 있던 옷에 특별한 마법이 걸려 있거나, 마도구를 숨기고 있을 수도 있지만… 정보가 부족하다.

 

  “으으…!”

 

  말실수를 해서 마수를 사냥하던 주먹이 나에게 향하는 걸 상상했더니 소름이 돋았다. 불안했지만 상납 기한까지 고작 3일 남은 상황,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나는 소년에게 접근했다. 제법 좋은 조건을 제안했지만, 의외로 덥썩 물진 않았다.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져 되려 이쪽이 불안해질 즈음 그는 결국 수락했다.

 

  우린 다음 날 새벽에 출발했다. 냑타는 물론이고 사막도 처음인지 소년은 여러모로 어색한 티가 났다. 직업병이라고 해야 할까. 가까워져서 좋을 일도 없는데 나는 소년과 대화를 텄다. 3일간 함께 여행하며 이것저것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아주 먼 곳에서 왔으며 어릴 적 버려져서 혼자라고 했다. 마수 사냥에 대한 건 자신만의 비법이라며 얼버무렸다.

 

  이런저런 과거의 일을 떠올리는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 이미 죽은 거 아닐까? 라는 생각에 비샤라는 천천히 눈을 떴다. 흐릿하던 시야가 점점 돌아오고 제대로 앞을 볼 수 있게 된 그녀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뭐하는 거야?”

 

  죽네 어쩌네 하는 예상을 바보 취급하듯, 소년은 자신의 얼굴을 주물럭거리고 있었다. 볼을 잡아 늘리거나 손바닥으로 눈두덩이를 문지를 때마다, 그의 얼굴은 이상하고 웃기게 변했다. 얼빠진 표정으로 보고 있는 비샤라에게 소년은 물었다.

 

  “너, 대체 뭐야?”

  “그건 내가 할 말이거든?!”

 

  -휭~

 

  건조한 사막 밤바람과 함께 두 사람은 쓰고 있던 가면을 벗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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