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작)

재활글 14

by 야미카 posted May 2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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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홍의 계약과 뉴 라이프





  “아 죽겠다.”

 

  늘 하던 입버릇이었지만, 이번엔 다소 진심이 섞여있다. 사방에서 풍기는 마수 시체 비린내, 사람을 쪄죽이려 드는 살인적인 햇빛이 그 원인이었다.

 

  “사막에 전갈도 아니고 랍스타는 뭔데?”

 

  잘 안 썩으면서 돈될 만한 부위를 뜯어내며 상준은 중얼거렸다. 사막 독꼬리 벌레라 불리는 이 마수는 지구의 바닷가재와 닮았다. 다만 꼬리 부분이 전갈처럼 생겼는데, 지구 출신인 그에게 있어 이런 모습은 혼종 그 자체로 느껴졌다.

 

  [그것보다 괜찮아? 이번에 마력을 너무 끌어 쓴 거 아니야?]

 

  ‘죽자고 달려드는데 별 수 있어? 싹 안 밀어버렸으면 지금 이렇게 얘기도 못했을 걸.’

 

  사막 한가운데에서 얼음에 꿰뚫려 죽은 수십 마리의 마수들. 피로 물든 얼음이 햇빛을 반사해 반짝이는 모습은 섬뜩하면서도 묘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광범위하게 널부러진 사체를 가리키며 아리오나는 말했다.

 

  [사막 독꼬리 벌레는 겁이 많아서 앞쪽에 있던 10마리 정도만 죽여도 도망쳤을 거야.]

 

  아리오나의 말에 상준은 콧방귀를 뀌었다.

 

  ‘언제부터 그렇게 마수 사랑이 지극했다고.’

 

  논지를 벗어난 대답에 그녀는 직설적으로 의견을 표출했다.

 

  [내가 마수 불쌍해서 하는 말이야? 마력 함부로 끌어쓰다 큰일 날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

 

  ‘팔다리 좀 저리다 말겠지… 심하면 얼굴이거나.’

 

  듣는 둥 마는 둥 건성으로 넘기는 상준. 그러면서 사막 독꼬리 벌레의 더듬이를 부지런히 뜯어냈다. 처음엔 마법에 대한 경계가 심했지만, 지금은 그런 흔적도 안 남았다. 그간의 대가라는 게 팔다리 좀 저리다 말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히 익숙해져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슬슬 갑시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냑타 두 마리를 이끌고 지지가 다가오고 있었다. 사람이라면 모를까 마수하고 붙을 실력도, 깡도 없는 그는 방해가 되지 않게 저 멀리 숨어있던 것이다.

 

  [여튼 조심 좀 해. 넌 네가 전례 없는 경우라는 걸 잊지 말라고.]

 

  ‘그래그래~ 알았어. 알았으니까 걱정 좀 그만….’

 

  “허억!”

 

  -풀썩

 

  갑작스런 가슴 통증. 상준은 맥없이 쓰러졌다.

 

  “어? 고객님 왜 그래요?!”

 

  화들짝 놀라 달려오는 지지. 그는 한 눈에 상준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 챘다. 딱히 의술을 배운 건 아니었지만, 응급처치나 약초에 대한 지식이 있었기에 뭐라도 해보려는 그때….

 

  -푸르릉!

 

  “어?! 야, 도망치지마!”

 

  얌전하던 냑타들이 울부짖으며 도망쳤다. 무엇을 보고 겁 먹은 건지는 금새 알 수 있었다.

 

  “키사피샤…!”

 

  키사피샤. 일명 청소부라 불리는 마수로 다른 생물의 사체를 주식으로 삼는다. 평상시엔 마수치고 얌전하지만, 배가 고파지면 180도 변한다. 식사를 방해하는 존재는 물론, 근처에 움직이는 모든 걸 공격한다. 동족끼리도 거슬린다 싶으면 살육전을 벌이며, 지는 쪽은 먹이로 전락한다. 주식이 사체인 거지 직접 사냥하는 것도 서슴치 않는다.

 

  “저것들이랑 마주치면 뼈도 못 추릴텐데.”

 

  지금 당장 응급처치가 필요한 인간을 챙겨서 도망칠 수 있을까? 키사피샤 무리와 상준을 번갈아 보는 지지. 고민 끝에 행동 방침을 정한 그는 결국 등을 돌렸다.

 

  “어쩔 수 없잖아!”

 

  죽어라 내달리며 지지는 소리쳤다. 별 볼 일 없는 그의 마법으론 눈에 불을 켜고 몰려드는 마수들을 막을 수도, 상준을 데리고 도망칠 수도 없다.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게 현실이니까.

 

  ‘내 행동을 하나하나 의심하는 게 짜증났어. 조금만 미심쩍어도 도끼눈을 뜨는 게 무서웠고, 수틀리면 협박부터 하는 게 거슬렸어.’

 

  마음을 독하게 먹고자 상준의 짜증나는 점을 늘어놔 보았지만, 뻔뻔해지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전과가 있으니까 쉽게 믿을 수 없었겠지. 결국 실행하진 않았지만 그의 밥에 약을 타려한 적도 있었어. 저녀석 맨날 말만 거칠게 하지 실제로 나한테 해코지 한 적도 없었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변명과 반박의 연속이었다. 내적 갈등, 번뇌가 그의 마음을 어지럽게 했다. 가이드가 되기 전엔 소매치기와 도둑질로 연명하던 주제에, 언제부터 양심적인 척을 하게 된 걸까.

 

  “언제부터….”

 

  과거를 떠올리는 지지, 느려지던 발걸음은 끝내 멈춰서고 말았다.

 

  ‘몸이 고단할지언정 마음만큼은 가난해지면 안된단다.’

 

  모래처럼 부스러질 것 같던 나에게 회생의 바람이 되어준 이가 해준 말. 지금 나는 그의 앞에서 떳떳할 수 있을까? 죽어가는 사람을 버리고 도망친 내가? 이대로 도망친다면 나는 두 번 다시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을거야.

 

  “… 돌아가자.”

 

  자신의 은인을 떠올린 지지는 결국 발걸음 돌렸다. 그의 결정을 지지하듯 운명의 바람이 등을 떠밀었다.

 

  “모래 폭풍이잖아아!”

 

  저 멀리 있음에도 똑똑히 보이는 모래 폭풍. 걸음아 날 살려라 사력을 다해 왔던 길로 내달렸다.

 

  ‘이거 어떻게 안되는 거야?’

 

  흐려져 가는 의식을 겨우 붙잡아가며 상준은 물었다.

 

  [신체 말단도 아니고 심장에 문제가 생긴 거잖아. 고통 받는 사람만 바뀔 뿐 해결할 순 없어~]

 

  ‘아예 변신하는 건 어때?’

 

  죽어가는 마당에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는 심정으로 해본 말이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냉정했다.

 

  [날개가 생기고 뿔이 돋아난다고 해서 심장이 정상으로 돌아오진 않아~ 차라리 변하고 나서 마법을 썼으면 모를까…. 어차피 지금 상태론 계약의 주문을 외칠 수도 없잖아.]

 

  ‘반쯤 죽은 거나 다름 없어서 그런가 더럽게 침착하네.’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이야기 하는 아리오나에게 툴툴대는 상준. 언제나 유들유들 흘려넘기던 아리오나였지만, 이번엔 달랐다.

 

  [적당히 해, 이 애새끼야.]

 

  ‘뭐 인마?!’

 

  달려들 것처럼 눈을 부릅 뜨는 상준에게 아리오나는 할 테면 해보란 식으로 대응했다.

 

  [이 사달을 낸 게 나냐? 너냐? 이 꼴이 되고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내가 너 조심하라고 했지?!]

 

  ‘너…!’

 

  상준의 말허리를 자르며 아리오나는 거침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왜 또 나 때문에 속아서 이러고 있다는 소리나 하려고? 그래, 미안하게 됐다! 내가 죽일 년이지? 근데 그럼 뭐 어떻게 해야 만족할래? 너네 세계엔 할복이라는 게 있던데, 배 가르기 내장 와르르쇼라도 하길 원하는 거야?!]

 

  빔이라도 나갈 것 같은 눈으로 노려보며 아리오나는 소리쳤다.

 

  [거짓말한 건 미안하게 생각하는데 언제까지 그걸로 울궈먹을 건데? 돌아갈 수 없으면 적응할 수밖에 없잖아. 그리고 만약 돌아갈 수 있다 해도 너 정말 돌아가긴 할거야?]

 

  정곡을 찔린 듯 차마 대꾸하지 못하는 상준에게 아리오나는 추가타를 꽂았다.

 

  [처음엔 정말 돌아가고 싶었을지 몰라도 지금의 넌 아닐 걸?]

 

  그녀의 말이 맞다. 처음엔 미지의 세계에 대한 공포가 앞섰지만, 마법을 쓸 수 있게 된 후엔 점점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몸의 주도권도 쥐고 있고, 사기 피해자라는 명분도 있다. 설령 정말 위험한 상황이 돼도 아리오나가 어떻게 해주리라는 안일함까지 생겼다. 이제 와서 폐지나 병을 줍고 무료 급식소를 전전하던 그때로 돌아갈 순 없었다.

 

  [그리고 반쯤 죽어있다고 했지? 그래 맞아. 난 죽은거나 마찬가지야. 너네 세계 말로 하면, 나는 귀신이나 다름없을 지도 모르지…. 한 번 죽은 것도 억울한데 세상에 두 번 죽고 싶은 사람이 있겠냐?]

 

  아리오나는 오열하듯 말을 쏟아냈다.

 

  [나는 꿈이 있었어. 나를 믿어주는 신하들도 있었고, 양손 그득그득 쥐고 있는 게 있었단 말이야. 그런데 죽어버렸어. 베이고 찔리고 잘리고 불탔어. 절대 이렇게 끝낼 수 없다는 생각에 최후의 도박을 던졌지. 처음엔 성공인 줄 알았어….]

 

  꿈에서 본 아리오나의 처절한 고함이 떠오른 상준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꼴이 될 줄이야…. 허약하고 연약한 고깃덩어리에 갇혀버렸는데, 심지어 몸의 주인도 아니야. 나이 차가 100살이 넘는 애새끼한테 설설 기어야 하는 기분을 네가 알아?]

 

  호흡을 하지 않는데도 헉헉대는 건 감정을 쏟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숨을 몰아쉬는 아리오나를 보며 상준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100살 이라니… 너, 할망구였구나.’

 

  뚜껑이 열린 그녀의 입에서 비속어가 튀어나오려는 그때였다.

 

  “진짜 미치겠네! 일어나 보라고요!”

 

  상준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세계에도 심장마사지가 있는 걸까. 끊기기 직전이었던 의식이 수면 위로 끌어 올려진다. 아리오나의 상욕이 멀어지고 흐릿해졌던 시야가 보이기 시작했다. 의식은 또렷하지 않고,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지만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건 대충 알 수 있었다.

 

  “이, 세… 을 바라.”

 

  스스로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입이 제대로 움직이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저 소망했다. 몸과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방벽을, 위험을 막아줄 요새를 상상했다.

 

  “이건 대체…?”

 

  상준의 가슴을 압박하던 지지는 갸우뚱했다. 상상력이 부족했던 걸까, 아니면 이 모습을 최적의 형태라 판단한 걸까. 진의는 본인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지름 2미터, 높이 2미터의 반구형 얼음집은 제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쾅!

 

  키사피샤가 얼음집을 공격했다. 하지만 날카로운 발톱으로 긁고, 근육덩어리인 꼬리를 휘둘러도 부서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살았다는 안도감에 지지의 손이 멈춘 순간….

 

  -퍽!

 

  파열음과 동시에 벽이 깨졌다.

 

  “으히익!?”

 

  키사피샤의 발톱에 얼굴 가죽이 찢길 뻔한 지지는 비명을 질렀다. 다시 심장마사지를 시작하자 금새 벽은 수복되었지만, 지금 이 순간의 안전이 얼마나 불안정한 것인지 깨달았다. 다시금 갈비뼈를 누르기 시작한 지지는 이상함을 느꼈다.

 

  ‘왜 일어나질 않지?’

 

  이상하다. 이만큼 했으면 의식을 차리는 게 정상일텐데, 처음엔 지쳐서 힘이 빠지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딱히 숨이 가쁜 것도 아니고 땀도 나지 않았다. 같은 힘을 주고 있는데도 점점 가슴을 압박하기 힘들어지고 있다. 당황스러웠지만, 그가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았다.

 

  더욱 힘을 실어 심장마사지를 실시하는 지지. 그의 짐작대로 상준의 심장 부근 근육은 점점 굳어가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마력 중독이 원인이니 마력 사용을 멈춰야 한다. 하지만 상준은 이글루를 유지하기 위해 마력을 계속 쓰고 있다. 심장 마사지로 인해 간신히 살아 있을 뿐, 지지가 손을 멈추면 얼마 못 가 죽고 말 것이다.

 

  -탁! 타다닥! 타탁! 퍽!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모래 폭풍이 이글루를 덮쳤다. 모래며 자갈, 짱돌이 얼음 벽을 사정없이 때렸다. 불행 중 다행은 청소부들이 소용돌이에 휘말려 날아갔다는 점이지만, 상준 일행에게 그런 것을 신경 쓸 여유따윈 없었다. 상준은 얼음 집을 지키기 위해 마력을 계속 쥐어짰고, 지지는 어떻게든 상준의 심장이 멈추지 않도록 해야했다.

 

  ‘가슴이 돌덩이 같아!’

 

  숨겨두었던 근력 증강제를 씹어 삼키며 지지는 팔에 힘을 줬다.

 

  ‘바람이 지나갈 때까지만 버티면 돼….’

 

  깬 것도 잠든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에서 상준은 오로지 이글루에만 온 정신을 쏟았다.

 

  -휘이이~

 

  모래 바람이 점점 멀어져 간다. 결국엔 밤이 끝나고 아침이 오듯 그들은 위기를 벗어난 것이다. 하지만 기쁨을 느낄 새도 없이 피로가 그들을 지배했다. 먼저 상준의 의식이 멀어졌고, 이글루가 천천히 사라졌다. 무아지경으로 심장마사지를 이어가던 지지도 얼마 못 가 기절하듯 쓰러졌다. 그들이 정신이 든 것은 땅거미가 진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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