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작)

재활글 20

by 야미카 posted Jul 1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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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홍의 계약과 뉴 라이프





아아아악!”

 

공중에서 추락한 늑대가 울부짖었다. 떨어진 충격보다 안구의 고통이 심한지 두 손으로 눈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소년은 질문 아닌 질문을 던졌다.

 

역시 사람은 밝게 살아야 해~ 어때, 대낮처럼 밝지? ”

시각 차단이라… 머리 좀 굴렸다만, 고작 이 정도로 날 이길 수 있다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팀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렸다.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상준이 있는 곳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청각과 후각 만으로도 널 찢어 죽이기엔 충분해!”

, 그럴 것 같더라.”

 

-

 

차갑다. 딱딱하다기엔 무르고 물렁하다기엔 단단한 감촉.

 

이건… 눈덩이?’

 

그가 입은 피해라곤 콧등이 조금 차가워진 것 뿐이었다. 아무 의미 없는 공격에 대해 신경을 끈 팀은 발톱을 드러냈다. 강철 단검보다도 예리해 보이는 발톱엔 눈길도 주지 않고 상준은 손가락을 튕겼다.

 

-콰드득!

 

살을 찌르고 뼈를 부수는 소리가

 

이… 새끼….”

 

팀의 분노에 찬 신음을 내뱉었다. 콧잔등에 남아있던 눈이 말뚝으로 변해 그의 턱을 뚫어버린 것이다. 위아래 턱이 말뚝에 관통 당한 것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큰 타격은 코가 망가진 것이었다. 감각이 망가진 틈을 노린 상준의 일격은 날카로웠다.

 

청각과 후각 만으로도 찢어 죽일 수 있댔지? 그럼 하나만 남은 상태에서는 어때? , 미안. 그 상태론 말하기 힘들겠네.”

 

죽… 어!”

 

옆구리를 찔린 팀이 팔을 휘둘렀지만, 이미 그 자리에 상준은 없었다.

 

소리 만으로 캐치 하는 거 엄청 어렵지? 근데 하다 보면 늘더라. 너도 이번 기회에 연습해 봐.”

 

웨어울프는 청각도 인간보단 뛰어나지만, 아무리 그래도 시각과 후각 만큼은 아니라서 기습을 피하는 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하나, , , 넷… 10개나 박아놨는데도 서있네. 너도 어지간히 독종이구나?”

 

돌아오는 말은 없었다. 피부를 찌르는 듯한 날선 마력 만으로도 충분한 대답이 됐다.

 

그래그래, 그럼 진짜 끝장을 보자고.”

 

너덜너덜해진 그에게 마지막 일격이 될 한 자루가 상준의 손을 떠났다. 온몸을 찔려도 버틴다 한들 머리에 꽂히고도 버틸 수 있을까. 이마에 결정타를 맞은 팀이 쓰러진다. 그것이 베스트 시나리오일 테지만….

 

-콰직!

 

파열음과 함께 팀의 몸에 박혀있던 얼음 칼날이 산산이 부서졌다. 이 순간, 적이 마지막 일격을 날리는 지금 이 순간만을 그는 기다렸다. 남은 힘을 끌어모았다. 온몸의 근육을 파열 시킬 기세로 뛰쳐나가는 팀. 그 모습은 말 그대로 인간 탄환이었다. 강철도 찢는 발톱이 상준의 심장을 노렸다.

 

빙설의 말뚝은 전류와 공명한다.”

커헉!”

 

-!

 

팀은 무게 중심을 잃고 흐트러졌다. 그 속도 그대로 목표를 비껴나가 얼음 기둥에 처박혔다. 그가 의식을 잃은 걸 확인한 상준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신기술 아니었으면 큰일날 뻔 했네.”

 

[그러게. 역시 얼음 단일보단 전기, 얼음 타입이 낫지~]

 

사람을 포켓몬 취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래그래~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어떡하긴, 팀을 끝장내고 주리도 마무리 해야지.”

 

[참고로 업화의 계약서는 계약 당사자를 죽인다고 해약 되진 않는다고?]

 

걱정 마. 다 생각이 있…!”

 

갑작스레 나타난 거대한 마력의 기척. 상준은 고개를 돌렸다.

 

[저걸 어떻게 할 방법도 있길 바랄게.]

 

세상사 마음대로 되는 게 없네.”

 

전에 없던 거대한 마력과 그 이상의 존재감은 그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라이트 마법을 없애고 눈을 뜨자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는 주리가 보였다. 마력보다도 살기가 그득 차 있는 눈동자가 훨씬 무서웠다.

 

냉정하게 생각하자… 분위기에 압도 되면 될 일도 안 돼. 난 분명히 척수를 공격했고, 주리는 무력화 됐어.’

 

“… 그런데 어떻게 다시 일어난 거지?”

 

여러 가설을 떠올려 보지만 정보가 부족하다. 당장 알 수 없는 건 제쳐두고 그 다음을 생각했다.

 

왜 기습하지 않았을까. 저만한 마력을 공격에 쏟아부었으면 난 막기 급급했을 거야.’

 

불현듯 그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만약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라면?’

 

허구한 날 티격대더니 그래도 동료는 동료인가 봐?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몸으로 미끼를 자처하다니.”

“…….”

말도 못할 상태면서 버티고 서 있단 말이지…. 사실 동료 이상의 관계였다 든가?”

 

주리는 움찔 했으나 인간의 시력으론 확인할 수 없을 만큼 작은 움직임이었다.

 

, 사정이 어떻든 내 알 바 아니지. 어차피 팀 다음은 댁이었으니, 원하는 대로 먼저 끝내 드릴게.”

 

[부추겨 놓고 이런 말하긴 뭣하긴 한데, 너 악역 같아.]

 

그런 거 신경 안 써!’

 

상준이 주문을 읊조리자 그의 주변에 스무 개 가량의 얼음 창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손끝이 가리킨 곳을 향해 일제히 쏘아졌다. 동시에 소년도 미끄러지듯 달려나갔다.

 

 

 

이 순간 주리의 눈은 정면을 향해 있었다. 하지만 흐릿한 시선 끝에 걸려있는 건 자신을 노리는 날카로운 창끝이나, 달려오는 적이 아닌 한 사람이었다.

 

몸 상태가 최악이야. 숨은 제대로 쉬고 있는 건가? 모르겠어. 온몸이 깨질 듯이 아프다. 이대로 쓰러지고 싶어. 혼자였다면 이렇지 않았을텐데…. 이건 다 그 녀석 탓이야.’

 

5년 전, 팀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른다. 여느 도깨비들과는 달리 나는 흥이 없는 성격이었다. 음주가무는 물론이고 누군가와 어울리는 일에 흥미를 못 느꼈다. 그래서 성인이 되자마자 고향을 떠났다. 발길 닿는대로 방랑하다 이 사막까지 오게 됐다. 타인과 거의 엮이지 않는 조용한 자급자족의 삶이었다. 웬 웨어울프 한 마리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거기 도깨비 누님! 힘 깨나 쓰시네요. 전 팀 버캣이라고 합니다. 저랑 결혼을 전제로 교제해보지 않을래요?”

“… 개소리 말고 꺼져.”

개소리라니~ 저는 키 크고 다부진 여성이 취향인 점에 한 점 부끄러움도 없는걸요.”

 

여느 때처럼 도적들을 박살 내고 상인에게 성의를 받아내던 중 그 녀석은 뜬금없이 내 앞에 등장했다. 귀찮게 들러붙는 걸 두들겨 패서 쫓아냈지만, 녀석은 매일같이 나타났다.

 

자기보다 강한 사람이면 된다는 거죠? 이래 봬도 저 제법 세다고요.”

 

너무 끈질기길래 아무 말이나 지어냈는데, 아예 덤비라며 자세를 잡는 게 아닌가. 유들유들한 겉모습과는 달리 녀석은 상당한 실력자였다. 결국 내가 이겼지만.

 

이야~ 실력엔 나름 자신이 있었는데, 이거 부끄럽네요.”

“… 생각 외로 좀 하네. 애먹었어.”

애를 먹는 건 좀 그렇고, 제 애를 배주지 않으실래요?”

“… 죽어.”

 

팀과 알게 된지 1년 좀 넘었을 즈음 그는 함께 술을 마시던 중 물었다.

 

누님은 대체 취향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설마 동성이 좋다 든가?”

팍 씨! 못하는 말이 없어. 네가 수준 미달인 걸 왜 나한테 이유를 찾아.”

아니, 제가 어디가 어때서요. 얼굴도 이만하면 괜찮고, 근육질에 재치 있고, 싸움도 잘하잖수!”

마빡에 손바닥 만한 흉터가 있고, 근육은 내가 더 크지. 그리고 네 입에서 나오는 건 재치가 아니라 깐족거림이고 싸움도 나한테 지잖아.”

 

자기가 모자란 게 아니라 내가 너무 고스펙이라 성토하는 그에게 나는 말했다.

 

하다못해 나보다 세지면 다시 생각해보지.”

 

술기운에 아무 말이나 한 거였는데, 팀은 그 날 이후 실력 향상에 힘쓰기 시작했다. 진심으로 나를 이기려는 것인지 해가 갈수록 실력이 좋아졌다. ,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실력도 많이 늘었고 요즘엔 남자다운 맛도 생겨서 나름 볼만해졌는데….’

 

주리는 흐릿한 실루엣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누워 있으면 어떡하냐….”

 

온몸이 부서지는 고통을 삼키며 주리는 손뼉을 모았다.

 

[저거 저거 움직인다! 마무리가 너무 어설펐던 거 아니야~?]

 

급소를 공격 당했는데 다시 일어서는 쪽이 이상한 거라고!’

 

[도깨비는 보통 신체를 맞부딪쳐 마법을 쓰지. 저거 안 막으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알고 있어!”

 

발바닥 부근에서 냉기가 터져 나왔다. 한층 더 가속하는 상준. 날다시피 뛰어간 그는 먼저 날아간 창을 따라잡았고, 스트라이커가 공을 차듯 그는 발등으로 창의 밑동을 걷어찼다.

 

-콰직!

 

날카로운 일격이 주리의 명치를 꿰뚫었다.

 

~ 진짜 힘들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계약서를 찾는 상준. 계약자의 부름에 나타난 양피지는 팔랑팔랑 떨어지더니 그의 손의 딱 들어왔다.

 

[그런데 네가 끌고 온 도적들을 다 합쳐도 100명을 못 채우지 않아?]

 

그걸 메꾸기 위한 주리와 팀이잖아.”

 

말뜻을 알아차린 아리오나는 다시 한 번 물었다.

 

[계약자들끼리 죽고 죽이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도적이라는 범주에 들어가는 거야? 자기네 말로는 의적이라고 했잖아.]

 

의적의 정의는 의로운 일을 하는 도적이잖아. 도적질의 대상이 다를 뿐 결국 도적이란 거지.”

 

[말장난인 것 같은데~]

 

쟤네도 100명 잡아오면 풀어준다더니 방해하면 안된다는 규정이 없다고 대놓고 견제 했잖아. 꼬우면 계약서에 적어놨어야지.”

 

상준은 의기양양하게 양피지를 펼쳤다. 그가 잡은 도적의 수는 99명이라 기록되어 있었다.

 

어라? 방금 주리까지 처리 했는데 왜 100명이 아니지?”

 

-!

 

온 살림살이를 땔감 삼아 타오르던 불마저 꺼지고, 고요해진 사막에 박수 소리가 울렸다.

 

염파(炎波).”

화마를 막는 빙하의 장벽!”

 

피할 길 없는 거대한 화염의 파도가 상준을 덮쳤다. 방어 마법을 시전 했지만, 불판 위 얼음처럼 실시간으로 녹아내렸다. 말 그대로 통구이가 될 위기에 놓인 소년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아리오나!”

 

[계약의 주문을 읊어!]

 

무슨 짓을 하는 거지?”

 

주리의 눈에는 화염 속에서 불쑥 누군가 나타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모조리 태워버리면 그만이니까.

 

이상해….”

 

계속해서 화력을 올리고 있는데 아직까지 살아있다. 단순히 생존해 있는 걸 넘어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다. 화염을 꺼트린 주리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던 자를 확인했다.

 

, 대체 정체가 뭐지?”

곧 죽을 양반이 알아서 뭐하게.”

 

날개와 뿔이 생기고 머리카락 끝이 붉게 물든 상준, 그는 이번에야 말로 구질구질한 악연을 끊기 위해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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