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홍의 계약과 뉴 라이프
“아아으에에….”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옹알이 같기도 한 소리가 의미 없이 떠돌다 흩어졌다. 지지융, 그는 음파야 비샤라 라는 가명으로 다년간 이 일을 하고 있는 베테랑이다. 사막은 제 집이나 다름 없는 가이드가 왜 이런 앓는 소릴 하는가 하면….
“이건 미친 짓이야… 냑타도 없이 사막을 어떻게 건너냐고~”
그의 한탄을 들은 상준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했다.
“없는 걸 찾아봤자 아쉽기만 할 걸.”
“이건 그냥 우는 소리가 아니에요! 가이드 교육할 때도 냑타를 타고 건너는 걸 전제로 가르친다고요.”
울상을 짓는 지지에게 상준은 넌지시 물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냑타 없이 사막을 건너야 할 경우의 대비책 같은 건 안 가르쳐 줬어?”
“통신용 마도구를 이용해 반다르 수도 경비대나 가이드 사무국에 연락하고, 안전한 장소에서 구조를 기다리라는 게 모범 답안이지만….”
지지는 말끝을 흐리며 호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단순한 디자인의 펜던트였다. 보석이 깨져 있지만 않았다면 제법 괜찮은 액세서리 였을 것이다.
“설마 그게….”
“그래요. 이게 통신용 마도구에요.”
“연락하면 되겠네.”
“여기 깨진 거 안 보여요?! 이건 이제 그냥 망가진 장식품이나 마찬가지라고요!”
“우리가 생각보다 많이 왔을지도 모르잖아. 수도에 거의 근접했다든가?”
자포자기에 빠지려는 지지에게 아무 말이나 해보는 상준 이었지만, 베테랑 가이드의 지식은 긍정적 망상을 원천 봉쇄했다.
“저~기 너머에 큰 바위 보이죠? 저게 보인다는 건 수도까지 못해도 10일은 더 걸린다는 뜻이에요. 물론 그것도 냑타가 있을 때 얘기죠. 물이랑 식량도 얼마 안 남았는데… 우린 망했어요.”
“그래도 가야지. 주저앉아서 말라죽길 기다릴 순 없잖아.”
정론이다. 분명 맞는 말이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지지는 납득할 수 없었다.
‘저 인간이 왜 저래?’
평소 부정적이고 틱틱 대던 사람이 갑자기 저런 소리를 한다? 뭔가 구린 냄새가 났다. 지지는 앞장 서서 걷던 상준을 바짝 쫓아갔다. 그가 상준의 어깨를 붙잡았을 때, 해가 쨍쨍한 사막에서 긍정적일 수 있는 이유를 알아차렸다.
“시원하네요.”
“놔줬으면 좋겠는데.”
“얼음 마법인가요? 혼자 얼음 마법으로 쾌적하게 있던 건가요?”
“더위 먹긴 싫으니까.”
“당신만 시원하면 다야? 어쩐지 이상하리만치 침착하더라니! 나한테도 그거 해줘요!”
도망가는 상준과 쫓아가는 지지, 사막에서의 추격전이 시작됐다.
“흐흐흐… 그래, 계속 함정 쪽으로 오는 거다.”
상준과 지지를 보며 음침하게 웃는 이가 있었다. 깜깜하고 수상한 장소에서 수정구를 쓰다듬으며 웃는 초로의 남자. 땅굴인지 동굴인지 모를 곰팡내 나는 공간은 수상쩍은 도구와 약품으로 어수선했다. 이런 눈 나빠지기 딱 좋은 공간에서 매부리코의 남자는 낄낄대고 있었다.
“최근 네 실험이 지지부진하다는 보고를 받았는데, 기분이 좋아보이는구나 푸와야쿠나사.”
“과, 관리자님 오셨습니까!”
갑작스레 등 뒤에서 나타난 인기척에 놀란 푸와야쿠나사는 재빠르게 무릎을 꿇었다. 그리곤 자신의 실험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얼마간 듣고 있던 관리자는 그의 말을 끊었다.
“변명 같은 건 듣고 싶지 않다. 네 가치는 곧 있을 업무 평가에서 입증해라. 쓸모없다 판단되면 어떻게 될진 알고 있겠지?”
“예, 아무렴요! 자, 잘 알고 있습니다.”
눈을 번뜩이는 관리자 앞에서 yes 이외의 답은 감히 올릴 수 없었다. 업무 평가에서 처분 판정 받은 자의 최후를 아는 푸와야쿠나사는 몸을 덜덜 떨었다. 관리자는 무덤덤하게 수정구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 두 명이 새로운 실험체인가?”
“예, 맞습니다. 특히 남자 쪽은 실험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킬 가능성이 있습죠.”
“… 가능성?”
“네, 그렇습니다. 며칠 전 사막에서 거대한 마력이 감지 됐잖습니까? 아무래도 그걸 저 소년이 한 것 같습니다.”
“확신이 아니라 추정인 것 같은데.”
“이 근방을 샅샅이 탐지해 보았지만, 원인이라 할만한 다른 요소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점은 저 소년에게선 일체 마력이 감지되지 않습니다.”
“체내 마력량이 너무 적어 감지가 안된 것 아닌가?”
“예, 그럴 가능성도 아주 없진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정하면 마력이 거의 없는 소년이 마수와 도적이 득시글한 사막을 가이드와 단 둘이서 건너는 건 불가능 합니다. 이건 아마도 방대한 마력을 감추기 위한 마도구를 갖고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푸와야쿠나사의 추측을 납득한 것일까. 관리자는 이 이상 따지지 않았다.
“그 분께서도 네 연구를 기대하고 계신다. 만약 기대를 저버린다면 어떻게 될진 알고 있겠지?”
“예!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나타났을 때처럼 관리자는 홀연히 사라졌다. 인기척이 사라지고 한참이 지나서야 푸와야쿠나사는 고갤 들었다.
“제기랄! 누군 성과를 안 내고 싶은 줄 알아? 그 녀석이 마력을 물 쓰듯 빨아먹을 줄 알았으면 나도 이딴 연구 시작도 안 했을 거라고!”
혼자 씩씩대던 푸와야쿠나사는 다시금 수정구를 바라보았다.
“저 녀석들이 마지막 희망이야. 어떻게든 연구 성과를 만들어내야 해.”
떨어질 듯 말 듯 매부리코 끝에 매달려 있던 땀방울이 수정 구슬 위로 떨어졌다. 그가 눈이 빠져라 보고 있는 두 사람도 마침 땀을 흘리고 있었다. 다만 이쪽은 땀으로 샤워한 꼴이었지만 말이다.
“허억… 허억….”
“하악… 하악….”
기세 좋게 시작된 술래잡기는 결국 승자 없이 막을 내렸다. 이 의미 없는 에너지 소모로 얻은 것이라곤, 턱 끝까지 차오른 숨과 땀으로 젖은 옷 뿐이었다. 말 없이 서로를 노려보는 상준과 지지.
“그냥 좀 해주면 덧납니까?”
“내가 왜? 춥지도 덥지도 않은 온도로 조절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
“본인이 괜찮다고 하잖아요! 같은 길을 가는 동료한테 은혜 좀 베푸는 게 그리도 싫어요?”
“시원한 냉풍 서비스~ 합리적인 가격에 모시겠습니다. 자, 지금이라면 콩팥 하나에 반나절~ 싸다 싸!”
“진짜 더럽다 더러워.”
한참을 노려보더니 이번엔 콧방귀를 뀌며 등 돌려버리는 두 사람이었다.
“”흥!””
[저렇게 원하는데 좀 해주지 그래~?]
상준의 볼을 콕콕 찌르는 아리오나에 비해 그의 태도는 사뭇 진지했다.
‘내 몸에 쓰기도 위험한 마법을 남한테 어떻게 써.’
[본인이 괜찮다잖아~]
‘까딱 잘못하면 몸의 수분을 죄다 얼려버릴 수도 있는데?’
[아직까진 그런 적 없잖아?]
‘지금까진 내 몸에만 썼던 거니까. 집중력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동상 입는다고. 이런 세심한 컨트롤을 2인분을 하라고? 그럴 바엔 그냥 덥게 지내고 만다.’
[그럼 그냥 덥게 지내면 되겠네.]
‘내가 왜?’
[가이드씨가 납득할는지 모르겠네~]
‘확실히 아까 그 모습을 생각하면… 으으.’
눈을 까뒤집고 자신을 쫓아오던 지지를 떠올리는 상준… 소름이 돋았다. 내버려두고 싶지만 사막은 넓고 갈 길은 멀다. 협력하지 않으면 죽음 뿐이라는 걸 상준은 잘 알고 있다. 그는 팔뚝 만한 얼음을 만들어 냈고, 꿍해 있을 지지에게 말했다.
“어이, 이거라도 들고….”
[엥? 없잖아?]
지지가 사라졌다.
“삐쳐서 혼자 가버렸다? 아니지. 그래 봬도 가이드고 사막의 위험성을 나보다 훨씬 잘 알고 있을텐데, 그런 멍청한 짓을 할 리가….”
아리오나는 저 너머까지 펼쳐진 사막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근처는 언덕이나 바위조차 없는 휑한 모래밭이야. 걔가 어디에 있든 한 눈에 보여야 한다고~]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
상준은 눈을 감고 마력의 기척을 살피기 시작했다. 상하좌우 탐지 범위를 넓혀가던 그는 지지를 찾아냈다. 거기에 더해 생각지도 못한 것까지 함께 말이다.
“뭐야, 이 밑에 뭔가 있어…!”
발밑에 무언가 득시글하게 있다는 걸 알아챈 상준이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땅속에서 튀어나온 덩쿨인지 촉수인지 모를 것이 그를 지하로 끌고 들어갔다. 발버둥 쳐보지만 힘으로는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었다.
‘어디까지고 끌려갈 순 없지.’
“이 몸을 붙드는 구속은 살얼음처럼 깨질지니.”
-파사삭!
상준의 발목을 잡고 있던 촉수가 얼어붙더니 산산이 부서졌다.
“우웩! 입에 모래 들어갔어….”
모래 섞인 침을 뱉어낸 상준은 발목에 붙어있는 촉수 조각을 떼어냈다.
[허허 기습에서 벗어나는 모습이 제법이구나. 10점이다.]
다시 한 번 스승님 노릇을 하는 아리오나에게 상준은 빈정댔다.
“답지 않게 평가가 후하십니다?”
[100점 만점이다.]
“너무 짠 거 아닙니까?”
그녀는 검지를 까딱거리며 말했다.
[기습을 허용한 시점에서 마이너스 백 점이다. 죽거나 다치진 않았지만, 적의 정체나 위치를 알아내지 못했잖느냐. 기죽지 말라고 주는 가산점이 아니었으면 넌 마이너스 2000점이었을 게야.]
‘점수가 얼마나 곤두박질 치는 거냐고….’
엄격한 건지 상냥한 건지 모를 스승의 태도에 난감해 하는 상준. 그는 현 상황에 집중하기로 했다.
“일어서기엔 천장이 낮고 팔을 쭉 뻗으면 좌우 벽에 손이 닿아. 전후방은 뚫려 있고… 땅굴인가?”
역시 시야가 깜깜하니 뭘 파악하기가 어려웠기에 상준은 불을 켜 보기로 했다.
“개동의 빛을 이곳에.”
밝아진 시야는 그에게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하나씩 가져다 주었다. 전자는 지지를 찾을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 그는 상준이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쓰러져 있었다. 후자는 지구인이라면 십중팔구 기겁할만한 것들에게 포위 당했다는 것이다.
[이야~ 바글바글하다는 말이 딱 이네. 바퀴벌레가 바글바글~]
평소라면 재미 없다며 한 소리 했을 상준이었지만, 지금 그의 뇌는 그런 생각을 할 여유 따윈 없었다.
‘저건바퀴가아니야그저생긴게닮은마수나그언저리의무언가지그러니까당황할필요없어….’
바퀴벌레로 밖에 안 보이는 생물이 앞뒤 통로를 막고 있어도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한 마리 한 마리의 크기가 초등학생만 해도 겁먹지 않았다. 그 숫자가 눈앞에 보이는 것만 스무 마리가 넘어도 동요하지 않았다. 냉정하고 지혜롭게 상황을 타개하려 했지만….
-사삭
“으아아아악!!”
무리였다. 벌레가 움직일 때 나는 특유의 소리가 고막에 꽂히는 순간, 소년은 폭발했다.
[야, 야! 진정해!]
땅속에서 함부로 마법을 썼다간 생매장 될 수도 있다는 냉정한 판단은 없었다. 수련을 했어도 너무 큰 마력을 끌어오면 큰 일이 날 수도 있다는 계산도 없었다. 지금 상준의 머릿속에 있는 건 혐오감과 공포심, 그리고 저것들을 없애고 싶다는 강한 마음 뿐이었다.
며칠 전, 끝없는 사막을 걷던 중 더위와 무료함을 잊고자 상준과 아리오나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우리 포타스족은 마법을 쓸 때 주문이 필요 없어.]
‘무영창이 된다고? 그러면 왜 그런 번거로운 일을 하는 거야?’
[중요한 건 마음이거든~]
눈만 꿈뻑거리던 상준은 이내 손가락으로 미간을 주무르며 한숨을 쉬었다.
‘내가 만화랑 애니 관련 기억 좀 적당히 보라 했지!’
[진짜야! 우리 종족의 마법은 강한 마음과 명확한 이미지만 있으면 위력이 강해진다고.]
‘존재하지도 않는 주문을 장황하게 읊는 것도 의미가 있어?’
[주문을 창작하는 과정 중에 마법의 형태를 자연스레 상상하게 되잖아. 나와라 불! 이러는 것보단 정오의 태양과 같은 불꽃을! 이라고 하는 쪽이 세 보이지 않아?]
‘그런가?’
[그렇다니까~]
반쯤 설득된 상준이 다시 한 번 물었다.
‘근데 너네 종족은 마법 성공률 평균 30% 라면서. 그거 하면 성공률 좀 올라가?’
뜨끔 했던 것일까. 아리오나는 뿔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안 하는 것보단 낫지만, 확률 자체가 워낙 낮다 보니… 하하~]
‘약팔이였네.’
[약팔이라니! 나는 주문 덕을 톡톡히 보고 있거든~ 내가 주문을 길게 읊었을 때 실패하는 거 봤어?!]
‘본 적은 없지만, 목숨 걸고 도박하는 것 같아서 꺼림칙한데.’
[다른 동족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대부분은 마법을 아예 안 쓰는 육체파거나, 신체 강화 같은 마력 그 자체를 활용하는 방식으로만 써먹더라고.]
‘역시 위험한 짓이었냐.’
[어어? 그렇게 보지 마~ 나는 우리 종족 중에서는 마법 적성이 뛰어난 편이라고. 특히 화염 계열 마법은 오히려 실패 하는 일이 더 적어.]
상준의 의심의 눈초리를 보자마자 아리오나는 해명에 나섰다.
[말이 샜는데 사실 중요한 건 나나 동족들이 아니라 너야.]
‘나?’
[그래. 무슨 조화인지는 몰라도 넌 분명히 우리 포타스의 마법을 쓰고 있지. 마법 적성이 꽝인 우리가 썼을 때도 충분히 강한 위력이 나오는데, 인간인 네가 제대로 쓴다면 얼마나 강력할까?]
‘에이, 너무 김칫국 마시는 거 아니야? 애초에 난 지구 출신이잖아. 사실 지금 쓰고 있는 마법도 어느 날 갑자기 못 쓰게 될지도 모르잖아.’
[그건 곤란한데 말이야~ 만에 하나라도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혹시나 모를 상황을 가정하며 아리오나는 골몰하기 시작했다.
‘지금보다 훨씬 강해질 수 있다면?’
기대하지 말라는 투로 대답한 상준 이었지만, 그의 가슴은 가능성으로 두근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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