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외로 그 역사가 깊은 '행운의 편지' (1926.8.12 동아일보)
보는대로 듣는대로 생각나는 대로
忙中閑人(망중한인)
‘행운편지’의 유행
수년 전에 조선에도 돌아다니던 ‘행운편지’가 요즘 또 유행된다. 너무 싱거워서 되려 괴상한 이 행운편지의 발생지는 태평양 건너편 미국이란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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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아무 별 것이 없다. 싱겁기가 그지없고 심심하기가 짝이 없는 편지다. 편지 내용이 너무 평온하니까 불온하다고 보는 셈인지 그래도 경찰은 공연히 날뛴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는 속담처럼 경찰의 눈에는 불온만 보이는지 덮어놓고 이 편지의 왕복을 ‘주의’하고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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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중한자’는 받을 연분이 없는지 아직 이 편지를 받지 못하였다. 받지는 못하여도 보기는 보았다. 실상 복받기보다도 글씨 쓰기가 귀찮아서 이 편지가 온다고 하여도 못 받은 체 할 작정이다. 그러나 이 편지를 받지 못한 사람은, 첫째 보고도 싶을 것이고, 둘째 ‘호박’이라도 얻을 생각이 간절할련지도 모르겠다. 이런 의미에 있어서 만천하 독자에게 위선 일제히 알린다. 쓸 데 없는 절차를 밟을 것 없이 이렇게 대번에 알리는 것이 이 더운 여름에 수고도 덜 것이고 밤잠 못 자는 경찰의 한숨도 풀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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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원문 = 이 행운의 편지는 친구 ○○○씨가 보낸 것인데 나는 행운의 연결을 깨뜨리지 않으려고 당신을 비롯하여 8명의 친구에게 보냅니다. 당신도 이 편지를 등사해서 24시간 안으로 9명의 친구에게 보내십시오. 이 행운의 편지는 미국 어떤 대가의 손으로부터 시작되어 전세계를 돌아다니도록 한 것이니 이 연결이 중단이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만약 이 연결을 깨뜨리는 때에는 당장에 악운이 이른다 합니다. 이대로 실행하면 당신은 9일 이내로 무슨 행운이든지 얻을 수 있습니다. (연결되어 온 경로의 인명人名은 약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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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가 이렇게 돌아다니면 얼마 동안에 얼마나 퍼질고?” 하고 이 기사를 읽는 독자는 누구든지 한 번 생각하여 볼 듯 하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알려질 숫자가 아니다. 적어도 연필로 계산을 하거나, 수판을 들고 놓아보아야 알 일이다. 내가 독자를 위하여 이왕 수고하는 김이니까, 이것까지 대신으로 풀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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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번에는 아홉 사람에게, 둘째 번에는 9×9=81 여든한 사람에게, 셋째번에는 칠백스물아홉 사람에게 퍼져간다. 이렇게 다섯번째만 가더라도 59,049명이나 되고, 열번만에 가서는 34억 8,678만 4,401명이나 된다. 전세계 인구의 두곱도 넘는다. 열한번째부터는 기가 막혀서 놓지 못할 숫자다. 이 이상 알고 싶은 독자가 있거든 혼자 풀어보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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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이란 이 같이 무서운 것이다. ‘연결’이란 이 같이 어마어마한 것이다. 원래 편지도 받지 못한 ‘망중한자’는 ‘행복’은커녕 ‘호박’도 얻지 못하였지마는 이 위대한 두 가지 힘을 이 행운편지에서 발견하였다.
Who's 트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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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성 편지를 추적해보면 비슷한 형태로 수세기는 거슬러 올라가지 않을까 싶은 물건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