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작)

재활글 24

by 야미카 posted Feb 0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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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홍의 계약과 뉴 라이프




그것의 기척을 가장 먼저 눈치챈 것은 아리오나였다
. 한순간이었지만 저 아래 지하 깊은 곳에서 마력이 느껴졌다. 사실 중요한 것은 마력 그 자체보단 사라지는 과정이었다. 마력은 누르면 꺼지는 전등 같은 게 아니다. 흔적이 남는다. 흔적을 지우는 결계나 마도구도 있지만 그것들 또한 흔적이 남는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말 그대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가이드 피해!”

 

아리오나는 지지를 걷어차려 했다. 하지만 여전히 육체의 주도권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고, 할 수 있는 건 소리치는 것 뿐이었다. 지지가 즉시 몸을 날렸다면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지지의 말에 반응할 수 없을 정도로 집중하고 있었다.

 

-덥석!

 

만약 그들을 삼킨 존재가 몸뚱이를 가지고 있었다면 딱 알맞는 효과음이었을 것이다. 한 조각 잘라간 케이크처럼 공간이 어색하게 비었다. 이계의 존재는 배부른 사자처럼 빈 공간에 자리 잡았다. 자신이 삼킨 것들을 소화시키기 위함이었다.

 

 

 

편안하다.’

 

뜨겁지 않은 햇살, 모래가 섞이지 않은 바람, 먼지 없는 상쾌한 공기는 오랜 사막 여행으로 지친 소년에게 더할 나위 없는 힐링이었다. 언제까지고 만끽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순 없었다.

 

거기 길바닥에서 뭐하는거요? 바빠 죽겠는데 얼른 비키쇼!”

아 죄송합니다~”

 

벌떡 일어난 상준은 자리를 비켰다. 어지간히도 바쁜지 수레꾼은 수레를 끌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옷에 묻은 흙을 털어낸 상준은 주위를 둘러봤다.

 

이런 곳에서 잘도 누워 있었네….”

 

늘어선 좌판과 흥정하는 어른, 구경하는 아이들까지…. 자신이 시장 한복판에 누워 있었음을 알게 된 그의 입에선 감탄 아닌 감탄이 나왔다.

 

역시 이거 꿈이겠지?”

 

[그렇게 생각해?]

 

꿈이 아니면 뭔데?”

 

[정 의심스러우면 확인해보든가.]

 

볼이라도 꼬집으라는 건가? 뭘 어쩌라는 것인지 몰라 갸우뚱하는 상준에게 그는 엄지와 검지로 총 모양을 만들더니, 주변에 있는 행인 한명 가리켰다. 그리곤 상준에게 똑같이 해보라며 권유했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상준은 똑같이 검지로 사람을 가리켰다. 갸우뚱하는 상준을 보고 빙긋 웃은 그는 나직이 속삭이듯 말했다.

 

[.]

 

-!

 

순식간이었다. 상준의 손끝에서 쏘아진 얼음이 행인의 머리에 적중했다. 과일을 구매하던 중년 여성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

 

상준은 당황했다. 주문은커녕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마법이 멋대로 나와버린 것이다. 여성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시끄럽던 시장 바닥에 정적이 흘렀다.

 

-땡그랑

 

동전일까? 그릇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가 물건을 떨어뜨리자 언제 그랬냐는 듯 정적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 자리를 비명과 고함이 채워나간다.

 

아줌마 괜찮아요?!”

경비병! 누가 경비병 좀 불러줘!”

술법이다! 누가 아줌마한테 술법을 쐈어!”

 

, 너 무슨 짓을 한거야?!’

 

상준은 따져물었다. 하지만 그는 능청스럽게 굴뿐이었다.

 

[마법을 쓴 건 넌데 왜 나한테 그런 소릴 하는거야?]

 

뭐가 어째? 이 뻔뻔한…!’

 

당장 추궁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저놈이야! 저놈이 술법을 쓰는 걸 내가 봤어!”

 

주변의 시선이 자신에게 꽂히는 걸 느끼는 상준. 자의가 아니었지만, 분명 자기 손에서 마법이 나간 건 사실이다. 제 몸 안에 있는 다른 존재가 한 겁니다. 따위의 변명을 해봤자 결과는 뻔할 것이다. 그는 입도 벙긋 할 수 없었다. 내장을 파먹으려는 마수나, 돈을 뜯으려는 도적에는 익숙할지 언정, 무고한 사람들이 자신을 노려보는 상황은 소년에게 낯설었다.

 

어떡하지? 도망쳐야 하나? 그러면 내가 했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잖아. 사정을 설명해야 하나? 어떻게,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머리가 복잡한가 보네. 재촉하는 건 아닌데 말이야 빨리 정하지 않으면 상황이 더 나빠질 것 같다?]

 

, 저기 경비병이다.”

여기에요! 빨리 와 주세요!”

 

같은 제복을 입은 남자 여럿이 뛰어오는 게 보인다. 상준은 더더욱 조급해졌다.

 

도망칠까?’

 

경비병이면 경찰과 비슷할텐데 경찰 앞에서 달아나면 죄를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저 사람들이라고 해서 내 안에 또 다른 사람이 있고, 마법은 그 녀석이 썼다는 허무맹랑한 소릴 믿어줄까? 고민하는 사이 경비병은 점점 다가온다. 그들의 귀가 보인다. 북슬북슬한 꼬리가 보인다. 갈색빛 눈동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소년은 정했다.

 

북풍의 질주를 재현할 두 다리를.”

어이, 거기 서!”

 

상준은 도망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해를 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자신은 이곳의 법을 모른다. 잡혔을 때 형량이 얼마나 나올지, 변호는 할 수 있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그것과는 별개로 상준은 경찰이나 그 비슷한 건 다 싫었다. 노숙자였을 때 막무가네로 집에 돌려보내질 뻔 했던 이후,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다리로 네 발로 뛰는 요호를 이기긴 힘들 걸.]

 

시끄러워.”

 

얄밉게 나불대는 걸 잘라내는 상준이었지만, 마법을 썼음에도 경비병을 따돌리지 못하고 있었다. 속도로 이기는 걸 포기한 그의 선택은 골목이었다. 오른쪽, 왼쪽으로 아무렇게나 달리는 상준. 여기에 더해 한 가지 더 꾀를 내었으니….

 

이게 뭐야?!”

 

다리가 얼어붙은 경비병이 소리쳤다. 상준이 설치한 함정은 제법 유효해서 다수의 경비병을 추격 불가 상태로 만들었다.

 

범인은 술법에 능숙하다! 술법 방어술을 사용해라!”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이 마법을 막아내는 술법을 전개하자 원점으로 돌아갔다.

 

[왜 이런 애들 장난 같은 짓을 하는 거야? 그냥 없애버릴 수 있잖아?]

 

상준은 그의 물음에 난색을 표했다.

 

저 사람들을 죽이라는 거야? 넌 내가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사람을 죽이는 사이코로 보이냐?”

 

[여기까지 오면서 죽인 인간이 몇 명인지 기억은 나? 뱀파이어도 있었고, 얼마 전엔 의적단인가 걔네도 죽였잖아. 사막에 들어와선 거의 하루에 대충 7,8명 꼴로 죽였을 걸~]

 

걔네 대부분이 나를 죽이려고 하거나, 돈 될만한 걸 뜯어내고 죽이려 한 놈들이잖아. 바라는 대로 얌전히 죽어줬어야 한다는 소리냐? 시답잖은 말장난 집어치워.”

 

[그래그래, 살인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모습이 네가 죽인 놈들이랑 점점 더 비슷해지는 것 같은데?]

 

이 자식이 말이면 단 줄 알아…!”

 

오늘 날을 잡은 건지 죽어라 물어뜯는 쪽과 들으면 들을수록 올라가는 혈압. 쫓기는 중이라는 걸 잊을 정도로 화가 머리끝까지 난 그때였다.

 

-!

 

경비병이 쏜 술법이 상준의 바로 옆에서 폭발했다. 연기가 걷히고 포박 준비를 끝낸 경비병들이 다가갔지만, 상준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제대로 맞은 벽은 무너지고, 주변에 있던 민가의 창문이 모조리 박살날 정도의 위력. 소년 하나를 날려버리기엔 차고 넘칠 정도 였다.

 

폭발에 휘말렸으니 멀쩡하진 못할거다! 주변을 샅샅이 뒤져라!”

 

대장의 지시가 떨어지자 경비병은 흩어졌다. 그들은 크게 두 조로 나뉘었다. 길목을 차단하는 조와, 수색조. 어느 가정집 앞에 선 두 경비병, 바바 쥬와 루루 하도 수색조였다.

 

계십니까?”

 

바바는 어느 집의 문을 두드렸다. 돌아온 대답은 앳된 목소리였다.

 

누구세요?”

꼬마야, 혹시 수상한 사람 못 봤니?”

수상한 사람?”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이에게 루루는 범죄자의 인상착의를 설명했다.

 

“… 이런 인간종 본 적 있니?”

 

주변 어른이 하는 걸 보고 배운걸까. 아이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있지도 않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민한다.

 

몰루겠어요!”

 

해맑게 웃는 아이의 모습에 녹아내리는 경비병들. 헤벌쭉한 표정을 한 채 루루는 말했다.

 

무지무지 나쁜 사람이니까 혹시 보면 꼭 알려주렴.”

나쁜 사람? 도둑질 한 거에요?”

 

루루는 연극을 하듯 과장된 억양을 선보이며 물음에 답했다.

 

훨씬 나쁘지~ 저 옆 시장에서 아주머니를 다치게 하고 도망쳤단다.”

아줌마 많이 다쳤어요?”

피가 많이 났어. 나쁜 사람이지? 너도 문단속 잘하고 조심하렴.”

! 아저씨들도 조심하세요!”

아이고 착해라. 근데 아저씨가 아니라 오빠란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바바에게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루루는 중얼거렸다.

 

어린애들한테 오빠 소리 듣고 싶어할 때야 말로 진짜 늙은 거라던데~”

뭐 이 자식아? 이게 빠져 가지고는!”

 

씩씩대는 선임과 싱글거리는 후임은 순식간에 아이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얼마 안 가 두 사람의 발소리마저 주위의 소란스러움과 한 데 섞여 분간할 수 없어졌다.

 

피가 철철 날 정도로 사람을 다치게 하다니… 안 그러게 생겨서 무서운 오빠였네.”

 

그렇게 말한 아이는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 무서운 사람을 보고 웃고 있는 네가 더 무섭다. 그리고….”

 

상준은 자신의 등에 올라가 있는 아이의 발을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

 

슬슬 내려오지?”

 

인간 발판이 되어 아이의 발 아래에서 쭈그려 있는 걸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퉁명스러운 태도가 말해주고 있었다.

 

밟는 느낌이 좋은데 조금만 더 이대로 있으면 안 돼?”

. . . . !”

 

상준이 몸을 들썩이자 폴짝 뛰어내린 아이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배짱 있는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아이를 보며 어이 없어 하는 상준에게 목소리가 들렸다.

 

[경비병이 사라진 지금 가야 해! 유일한 목격자만 없애버리면 널 못 잡을 거야!]

 

없애라니… 지금 쟤를 죽이라는 거야? 처음 보는 나를 그냥 숨겨 줬는데?’

 

목격자 살해를 종용하는 목소리를 쳐내는 그에게 아이는 다가왔다.

 

, 그러고 보니 감사 인사가 아직 이었네. 숨겨줘서 고마워….”

 

아이는 손을 내밀더니 말했다.

 

.”

?”

 

당황한 상준이 되묻자 아이는 표정을 찡그렸다. 눈치가 그리도 없냐고 질책하는 듯한 눈빛으로 아이는 다시 한 번 말했다.

 

돈 달라고요, . 설마 말 몇 마디로 퉁 치려는 거 아니죠?”

 

얼른 내놓으라는 듯 손끝을 까딱 거리는 모양새는 그야말로 일수꾼 꿈나무였다.

 

, 미안한데 지금 내가 가진 게 한 푼도 없어.”

진짜 아무것도 없어요?”

 

바지 주머니를 까뒤집으며 빈털터리임을 증명하는 상준. 그걸 본 아이의 얼굴이 팍 구겨졌다.

 

에이 씨, 옷 멀쩡히 입고 있길래 돈 좀 있는 줄 알았더니 거지였네.”

 

[죽이자.]

 

조용히 해.’

 

아저씨, 쫓기던 처지 였으니까 원래대로 돌아가도 상관없죠?”

 

상준이 대답하기도 전에 아이는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온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쳤다.

 

사람살려어어!!”

이런 미친… 뭐 하는 짓이야!”

 

깜짝 놀란 상준이 아이의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곳을 향해 다가오는 수많은 발소리… 하는 수 없이 그는 다시금 도주를 시작했다. 옆구리엔 인질을 낀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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