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금 건국사) 0-3 편 : 1583년 거병 당시의 누르하치의 군대수
(삽화 출처 : 네이버 웹툰 칼부림)
자신의 부친 '아구'의 복수를 명분으로 명나라를 상대로 반기를 들었던 건주 구러성의 성주 아타이는 결국 1583년 2월 구러성 전투에서 명군 토벌대 총지휘관 -요동총병 이성량에게 패배하고 전사한다. 그것으로 아타이의 난은 완전히 진압되었다. 이 과정에서 수천명의 여진인들이 참살당했다.
그러나 그것은 한 사건의 끝인 동시에 새로운 국면의 시작이었다. 아타이의 난 진압 과정에서 허투 알라의 버일러였던 기오창가와 그 아들 탘시가 명군에 의해 억울하게 살해당한 탓이엇다.
탘시의 아들이자 기오창가의 손자인 누르하치는 사태 이후 명나라에 대해 본래의 태도를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이성량에게 소소한 사과와 배상을 받았으나 누르하치는 거기서 더 나아가 책임자에 대한 복수를 원하다는 뜻을 내비쳤다.
누르하치가 꼽은 책임자란 아타이의 난 당시 명군의 편에 서서 종군한 건주 버일러 니칸 와일란이었다. 누르하치는 니칸 와일란이 바로 자신의 부친과 조부가 죽는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믿고 있었고, 그렇기에 명나라에 복수를 청원했다. 그러나 이성량을 비롯한 명측은 누르하치의 해당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배상으로 해당 문제가 종결지어졌다고 파악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 누르하치의 편을 들어 니칸 와일란을 제거하자면 친명파 추장 하나를 스스로 제거하는 셈이 되었다. 그들로서는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명측과 이성량이 니칸 와일란을 도우며 누르하치를 찍어누르려 하지도 않았다. 그들로서는 친명파 버일러였던 니칸 와일란과 누르하치 둘 중 어느 한 쪽의 편을 들지 않고 중립의 자세를 견지하려 했던 것 같다. 특히 이성량은 누르하치의 일족 및 누르하치와 기존부터 전략적 우호 관계가 있었음이 파악되기에, 해당 상황에서 어느 한 쪽의 편을 들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1
이 상황에서 누르하치는 '복수'와 '생존', 그리고 '야망'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위해 니칸 와일란을 칠 것을 결정했다. 그는 약 3개월여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니칸 와일란의 투룬성을 공격했고, 니칸 와일란을 도망치게 하여 그의 영향력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주었다. 그리고 그 때서부터 본격적으로 누르하치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삽화 출처 : 네이버 웹툰 칼부림)
1583년의 최초 거병 당시 누르하치의 힘은 어느 정도였을까? 일단 거병 직전 누르하치는 고작 30여명의 친족, 구추들만을 직속으로 두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 '30여명'이라는 직속 수하 숫자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파견 나온 명의 부총병 이여매의 거론으로 확실시 된다.2 이여매는 비록 명나라 장수이지만, '그' 이성량의 아들로서 누르하치의 당시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으므로 그의 발언은 신빙성이 상당히 높다.
한편, 누르하치에게 존재하던 갑주는 고작 13벌이었다.3 그것은 부친 탘시의 유품이었는데, 그로서 누르하치는 30명의 친족과 구추들 중 정예 12명(한 명은 자신)에게 갑주를 입혀줄 수 있었다. 16세기 당시 여진 세력의 갑주 수급률을 생각해 보자면 비율이 아주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비율이 아니라 숫자였다. 고작 13명의 갑병, 도합하여 30명의 병력은 '거병'을 운운하기에 심히 부족한 전력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누르하치에게 '동맹자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전부터 친분이 있었던 기야무후의 가하샨 하스후와 잔 비라의 창슈와 양슈 형제, 그리고 사르후의 노미나와 나이카다 형제가 모두 누르하치의 거병에 동참하기로 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니칸 와일란의 안하무인한 태도와 행보를 내심 아니꼽게 생각하고 있었고, 그런 니칸 와일란에게 대항할 구심점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마침 명망이 높은 가문의 누르하치가 그 역할을 자처하였으므로 그들은 누르하치와 함께 '니칸 와일란 토벌'의 맹세를 나누었다.
이들 중 노미나와 나이카다 형제의 경우 거병전 누르하치의 친족이자 닝구타 버일러 세력4내의 반(反)누르하치 파의 인물 중 한 명인 롱돈의 종용을 따라 중간에 슬그머니 물러났다. 그러나 나머지 세 명, 가하샨 하스후와 창슈, 양슈는 누르하치를 배신하지 않고 그와 함께 투런성 공략에 함께 했다.
이들의 군세를 모두 합쳤을 때에, 누르하치의 군대는 약 100여명이었다. 그 중에서 갑옷을 입은 갑병(uksin)은 30여명이었다.5 혼자서 움직일 때보다는 무척이나 강해진 것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하기 짝이 없는 군세임은 마찬가지였다. 명나라가 주시하던 수준의 추장이었던 니칸 와일란을 상대로 공성전을 시도하기에는, 객관적으로 턱없이 모자른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르하치는 그대로 진격을 개시했고 그것으로 자신의 첫 원정을 시작했다.
한편, 원초적 만문 사료인 겅기연 한의 이전 좋은 기록(nenehe genggiyen han i sain yabuha kooli uheri juwan nadan debtelin, 현행전례)에는 누르하치의 거병 당시 병력수에 관해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 서술이 나온다.
현행전례 원문을 살펴 보자면 다음과 같은 서술이 존재한다.
[sure beile i gūsin uksin. emu tanggū cooha i tere turun i hoton be afame gaiha.]
해당 부분은 수러 버일러(누르하치)가 군대를 동원하여 투룬의 성을 공격하여 빼앗았다는 서술구이다. 그런데 'emu tanggū cooha i tere turun' 부분에서 초오하(군대)의 다음에 오는 i의 해석을 어찌하느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i를 일반적 용례대로 '의'로 해석한다면 30명의 갑병으로 100명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투런성을 공격하여 빼앗았다는 풀이가 되는 반면, i를 '으로' 등으로 해석할 시 30명의 갑병, 100명의 군대로 투룬성을 공격하여 빼앗았다는 해석이 된다.
이에 대해, 이시바시 다카오의 경우 투룬성에 100명의 니칸 와일란의 군대가 남아있었다고 해석하여 1583년 5월의 투룬 전투 당시의 누르하치의 군대를 30명, 투런성의 군대를 100명으로 비정하였다.
그러나 실상 현행전례 이후 편찬된 모든 후금-청 계통 사료들이 당시 누르하치의 군대를 '30명의 갑병, 도합 100명 군대'6로 비정하고 있다는 점을 보자면 현행전례 역시도 '30명의 갑병, 100명의 군대'로 투런성을 공격했다고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한 가지 특별한 것은, 현행전례 이후의 사료들은 모두 누르하치가 데리고 있던 병력수에 대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누르하치의 군대를 확실하게 한 문장으로 독립시켜 다룬다는 것이다. 이는 현행전례처럼 문법적인 문제로 인해 해석에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특별한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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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주실록이나 현행전례등에서는 누르하치가 계속해서 니칸 와일란의 목숨을 요구하자 명나라가 마치 니칸 와일란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고자 했던 것처럼 서술되나 실상 명나라는 니칸 와일란에 대한 뚜렷한 지원을 하지 않았다.
2.조선왕조실록 선조 31년 음력 2월 3일
3.청태조실록 만력 11년 5월, 만주실록 만력 11년 5월
4.누르하치가 속한 일족이라 할 수 있는 집단
5.청태조실록 만력 11년 5월, 만주실록 만력 11년 5월
6.혹은 100명에 약간 부족한 군대로 묘사되기도 한다. 특히 무황제실록의 한문본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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