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게임

트릭컬 [재연재] 2장 Chapter 1. 요정의 터 (3)

by lbygxk posted Jun 23, 202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출처 https://cafe.naver.com/trickcal/16676
https://cafe.naver.com/trickcal/16676
https://cafe.daum.net/rollthechess/qGtL/174?svc=cafeapi
 

더_트릭컬.jpg
 

Ch2. 나무의 관찰



1. 요정의 터 (3)

세계수광신도_메이르.jpg
 

“세계수를 믿으세요! 믿으면 복이 옵니다!”

“이 세계수 그림을 머리맡에 두고 자면! 머리가 좋아지고! 머리도 납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잘못한 건 맞는 거 같다.

내 본체 주변을 빙빙 도는 요정이 많아졌다. 단순히 찬양만 하는 게 아니라 날 믿으라고 선전까지 하면서 말이다.

아니 왜? 내가 분명히 자기들 일에 충실하고 난 신경 쓰지 말라는 투로 얘기했잖아? 물론 날 찬양하는 거야 자기들 마음대로 하라고는 했지만. 내가 그런 말을 해놓고 말리기도 그런데. 뭐 아무 반응 안 해주면 적당히 하다 지쳐서 관두겠지.

그래서 한동안 본체에 의식을 두지 않고 아셀린과 같이 마을을 돌아다녔다. 아셀린은 이해력이 조금 부족하긴 했어도 설명은 잘하는 아이였다.

“여기는 예술지구인데 특히 미술을 하는 요정들이 많이 살아요. 음, 3일인가 4일 전에 갔던 시끄러운 동네 기억하시죠? 거기도 예술지구에서 음악 중심 지구였어요.”

조잘조잘 떠드는 아셀린의 말을 들으며 거리를 둘러보았다. 확실히 알록달록한 색상이 많이 칠해진 거리였다. 요정이 만들어낸 문화와 사회는 꽤 신기했다. 요정들 스스로 이 정도까지 발전했다는 사실이 대견하고 기특했다. 분명 그러한데…… 솔직히 조금 실망이다.

새롭지 않았다. 어디선가 듣고 본 느낌이다. 어디선가, 라고 말할 게 달리 뭐가 있을까. 내가 아는 것이라고 해 보았자, 나 스스로 경험한 것 외에는 모두 에린이 해준 이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한 것 뿐이다. 결국 이 요정들은 내가 무의식중에 에린을 꿈꾸며 에린에게 들었던 것을 재현한 것에 그친다는 것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궁금해졌다. 만약 조금 더 시간이 있었다면 내가 알지 못하는 완전히 새로운 문명이 만들어졌을까?

“내가 너무 일찍 깼나 봐.”

“예, 옛?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엘드르님?”

“아니, 아무것도 아니란다. 그냥 혼잣말이야.”

갸우뚱하는 아셀린을 외면했다. 이 아이에게 내 생각을 들려줄 정도로 눈치 없진 않았다. 요정이 그려 놓은 벽화를 감상하는 척하며 생각했다. 나는 요정들이 에린의 빈자리를 채워주길 바라는 걸까? 그러면 완전히 에린 같아진 요정을 원할까? 아니면 에린처럼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던져주길 원하는 걸까? 나도 내가 뭘 바라는지 모르겠다. 다만 조금 더 잠을 자다가 깨어난다면 요정들이 그 답을 내놓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점점 굳어졌다.

잠깐. 그럼 그냥 더 자면 되잖아? 생각해보니 지금 굳이 깨어 있을 이유가 없어. 맞아. 더 자고 일어나면 되는 거야!

“아셀린.”

“예?”

“이걸로 요정 마을 소개는 끝이지?”

“네.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저희가 만들어 놓은 건 다 보여드렸어요!”

“그럼 이제 작별할 시간이네.”

내 말에 아셀린은 들고 있던 안내판을 툭 떨어트릴 정도로 놀랐다. 그리고는 허둥대면서 나에게 딱 달라붙어 물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너희가 그동안 얼마나 발전했는지 알았어.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이만큼이나 성장했지. 괜찮다는 걸 확인했으니까 나는 다시 잠들 생각이야.”

“어…… 정말요? 엘드르님이 원하신다면 저야 상관없긴 하지만…….”

대놓고 아쉬운 기색의 아셀린을 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풀죽은 새끼늑대 같아서 머리라도 쓰다듬어줄까 고민하던 순간에 갑자기 요정 하나가 쏜살같이 뛰어왔다.

“여왕님! 여왕니이임!!!”

마법으로 달리는 속도를 무리하게 높인 모양인지 뛰어온 요정은 많이 지쳐있었다. 헥헥대며 잠깐 숨을 고른 요정이 다급하게 말했다.

“크, 큰일이에요! 기념식……세계수님 주변에……!”

내 본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웬 요정 무리들이 모여서 난리를 피우고 있어요! 빨리 여왕님이 가보셔야 할 거 같아요! 세, 세계수님도요!”

마침 마을을 다 둘러보았고 다시 잠들려고 마음먹은 참이었다. 본체로 돌아가야 했는데 잘 됐다고 생각하며 아셀린과 함께 헥헥대는 요정을 따라갔다. 본체 앞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거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으니 적당히 주의만 주면 될 거라 생각했다. 그게 얼마나 안일한 생각이었는지는 도착한 순간 바로 깨달았다.

“도끼를 처형해라!”

눈을 뜬 이후로 그렇게 많은 도끼는 처음 봤다. 도끼는 내 밑동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도끼의 산 위에 나에게 ‘전언’을 받았다는 요정이 보였다. 도끼 산 주변으로 그 요정을 따르는 다수의 요정이 둘러싸고 있었는데, 다른 요정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몸싸움을 벌여댔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내 가지치기용 도끼를 왜 처형해?”

“도끼는 존재 그 자체가 죄다!”

전언을 받은 수수한 옷차림의 요정, 메이르는 처음 만났을 때와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도끼를 둘러싼 요정들을 메이르가 주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를 찾아온 요정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설명해줬다. 메이르를 따르는 요정들이 우격다짐으로 다른 요정들의 도끼를 강탈했고 한다.

도대체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인 걸까? 나는 도끼를 없애라고 하지 않았다. 그저 내 근처에만 들고 오지 말라고 했을 뿐이다. 그런데 저 요정은 도끼를 아예 없애려고 든다.

어쨌건 내 말로 인해 벌어진 일이다. 자기 멋대로 이해하긴 해도 메이르가 내 말은 들어주니 내가 나서야 한다.

“메이르. 이상한 짓은 그만둬라.”

“엘드르시여! 당신의 충실한 종이 전언을 이행했나이다! 이제 당신께서 내리신 첫 과업을 성공하기 직전이니 부디 종복의 충실한 마음을 지켜봐 주시옵소서!”

머리가 지끈거린다. 메이르에겐 눈앞의 내가 아니라 자기 마음속에 만든 내가 보이는 모양이다. 메이르는 자신의 행동에 거침이 없었다. 도끼 산에 마법으로 불을 붙였다. 바로 그 자신이 도끼 산 위에 올라타 있었음에도.

화륵!

“지, 지금 뭐 하는 거야!?”

메이르의 과감한 행동에 당황했지만 이대로 불에 타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

멀찍이 떨어진 메이르에게 손을 뻗어 그대로 잡아챘다.

부웅!

보이지 않는 권능이 불타는 도끼산 속에서 메이르를 튕겨냈다. 메이르는 힘없이 딸려와 나무의 밑동에 부딪히더니 풀썩하고 쓰러져버렸다. 메이르를 구하자마자 아셀린이 다른 요정들을 이끌고 불을 껐다. 자연적인 불이 아니라 마법으로 일으킨 불은 도끼날의 쇠도 녹일 기세로 타올랐다. 주변에 모인 요정들 모두 물 마법을 사용해도 불길이 쉽사리 잡히지 않았다. 나는 쓰러진 메이르에게 다가갔다. 뭐가 그렇게 억울한지 메이르는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모르겠어요! 당신이야말로 왜 저에게 이러시는 거예요, 엘드르시여!”

울컥해서 따지는 목소리가 마치 피를 토하는 것처럼 들렸다. 내가 창조해낸 요정이지만, 나는 그 요정의 목소리가 무섭게 느껴졌다.

“나야말로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메이르. 애초에 내 말을 이상하게 받아들인 건 너잖아?”

“전 그냥 시키신 대로 했을 뿐이잖아요!”

“내가 남의 도끼를 뺏으라고 했어? 도끼를 불태우라고 했어? 다른 아이들을 힘들게 하라고 했어? 도대체 내가 너에게 뭘 시켰다는 거야?”

“도끼를 없애라고 하셨잖아요!”

“그건…… 하! 너 정말 이상하구나, 메이르.”

내 말에 메이르는 절망적인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푹 떨구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듯했다. 몇 번을 중얼거리며 스스로 확신을 가진 듯 이내 나에게 들릴 정도로 목소리를 키웠다.

“신이 없는 세상이었다면 제가 이상한 게 맞을 거예요……. 당신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실제로 이상한 요정 취급을 받았고 그게 당연했어요! 저도 저 자신이 가끔은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좋았어요! 저한테는 그렇게 사는 게 보람찼으니까! 그게 내 삶의 이유였으니까!”

마지막 말을 내뱉을 즈음에는 이미 고개가 들려있었다. 절망에 원망이 섞인 눈이 날 향했다. 나는 도무지 저 눈빛에 마주댈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미친 것 같은 이 요정이 무서웠다.

“…….”

“하지만 이제 신이 있다는 게 증명됐잖아요! 이 세상을 만드신 신께서 강림하셨잖아요! 그럼 신의 뜻을 따르는 게 당연하고 그걸 따르지 않는 요정이 이상한 세상이 된 거라고요! 아니에요? 그게 맞잖아요? 당신께서 하신 말씀이 곧 법이 되고 세상의 규칙인 거잖아요!”

머리가 복잡했다. 창조주 대접은 살짝 부담스러운 일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이거다. 결코 좋기만 한 일이 아니고, 절대로 쉬운 일도 아니었다. 내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떤 이들에게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과도 같았다. 자연의 이치가 되고 섭리처럼 여겨졌다.

“제가 한 짓이 잘못된 것이라면 애초에 왜 그렇게 시키신 건가요? 저를 시험하려고 하신 건가요? 제가 어떻게 하길 원하신 건가요? 제발 저에게 답을 알려주세요, 엘드르시여! 우리의 세계수시여! 이 세계의 창조주시여!”

억지로 울음을 참는 목소리에 분이 서려 있었다. 그 물음에 내가 무엇을 대답할 수 있을까.

아무런 대답도 내놓지 못하며 나는 깨달았다.

메이르의 믿음은 의존의 다른 뜻이다. 내가 나타나기 전에는 스스로 판단하여 옳고 그름을 구별했지만, 내가 나타나면서 그 벽이 깨어졌다. 스스로 사고하기를 멈추고 나에게 전적으로 의지했다. 본인의 행동이 어떻게 비치든 나의 말에 따르는 것이 무조건 옳았으니까. 남의 도끼를 불태우는 것이 나쁜가? 나쁜 일이다. 하지만 신이 도끼를 불태우라고 했다면? 옳은 일이다.

어떤 요정에게는 나의 존재가 그런 의미가 되었다. 훌쩍이는 메이르를 말없이 내려보면서 한가지 결론을 내렸다. 나는 이들에게 미지의 존재로 남아야 한다.

“메이르는 추방이야!”

아셀린이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다른 요정들과 함께 몰려왔다. 겨우겨우 불을 껐는지 다들 군데군데 그을리거나 얼굴에 숯검정 칠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불을 끄는 걸 내가 도와줬어야 했을까. 아니다. 내가 나서선 안 된다.

“메이르는 마을에 같이 살 자격 없어! 메이르, 너무 이상해!”

“하지만, 하지만 나는……!”

메이르는 눈물이 잔뜩 고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눈을 부릅떴다. 내가 어떤 눈으로 메이르를 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미 일이 벌어진 이상 내가 메이르를 달래서 마을과 중재시켜도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아셀린과 다른 요정들은 마음속에 계속 메이르가 저지른 일을 담고 살아갈 것이고, 메이르는 방금 전처럼 자신의 잘못까지 또 나에게 의지하려 들 것이다.

“오늘 저녁까지 너랑 널 따르는 애들도 모두 마을에서 나가줘. 더는 같이 못 살겠어!”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러는 거야! 너희들이 이상한 거야! 나는 틀리지 않았어, 틀리지 않았다고!”

시끄러웠다.

귀로 들리는 소음만큼이나 머릿속의 고민과 마음속의 갈등이 시끄러웠다. 머릿속은 몰라도 귀로 들리는 소음은 잠재울 방법이 있다.

[쉿.]

요정들이 잠들었다. 조금 전까지 서로 감정을 부딪히며 싸우던 이들이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바로 쓰러졌다. 내 앞에서 싸우던 요정들만이 아니다. 이 숲, 나의 숲에 있는 모든 요정이 한순간에 잠들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나는 잠든 요정들을 저마다의 집에 눕혀줬다. 이제 이들은 영원히 잠을 자는 상태로 남을 것이기에 편하게 재우고 싶었다. 실패작이지만 내가 만든 애들이다. 이번 일로 교훈을 얻었다. 다시는 내 아이들에게 정체를 밝히지 않을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존재를 알고 있는 아이가 남아 있으면 안 된다.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자.

시간을 앞으로 돌리면 좋겠지만 그건 내 힘으로도 불가능하다. 애초에 잠들려는 이유도 미래를 앞당기기 위해서였다.

요정들을 모두 제자리에 안치시켰다.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뿌리내린 이 숲을 떠나보기로 했다. 에린과 추억이 깃든 장소를 뒤로하는 게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잠을 자는 동안에도 새로이 요정들을 만들어낸다. 새로 태어난 요정들이 영면에 든 요정을 보고 놀라거나 깨우게 해선 안 된다. 아예 존재를 모르게 해야 한다.

그렇게 나는 고향을 떠났다.

내 기준으로도 머나먼 땅에 뿌리를 새로 내리고 숲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잠들었다.

새 아이들이 새 땅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기를 바라며.


 

TAG •

Articles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