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릭컬 [재연재] 2장 Chapter 2. 엘리아스 숲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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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2. 나무의 관찰
2. 엘리아스 숲 (3)
모든 수인이 마을 입구에서 만난 아이 같지는 않았다. 우선 그렇게 단순한 수인은 잘 없었으며, 또한 요정의 모습인 나에게 호의적인 수인도 잘 없었다. 굳이 적대적으로 보일 필요가 없었기에 나는 실체화를 푼 채로 코코아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코코아는 킁킁거리며 통조림을 찾아다녔다.
누가 먹다가 남긴 통조림은 찾기도 쉽고 먹기도 쉬웠다. 가끔 열려 있지 않은 통조림도 발견했는데, 그럴 때마다 코코아는 날 향해 똘망똘망한 눈빛을 보냈다. 나는 아무리 해도 코코아의 강력한 마법을 벗어날 수 없었다. 잠시 실체화한 나는 자동 캔따개가 되어 코코아에게 통조림을 따줬다.
그렇게 코코아는 수인마을에서 통조림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어떤 창고 앞에서 문을 벅벅 긁었다.
앙!
[일단 근처에 수인들이 다 자러 가면 그때 열어줄게. 조금만 기다려. 윽! 제발 그렇게 보지 말고.]
가까스로 코코아의 눈빛 마법을 외면했다. 그런데 이 녀석은 어떻게 내가 실체화를 풀어도 알아차리는 거지? 처음엔 분명히 못 봤는데? 설마 나한테서 냄새나나? 그런 생각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창고 근처에는 아직 수인들이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내가 수인으로 모습을 바꿀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수인끼리도 저 사료를 두고 서로 싸움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괜히 싸움에 휘말리고 싶진 않다.
끼잉- 끼이잉-!
내가 문을 열어주지 않자 코코아는 큰 소리로 울었다. 마치 칭얼대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 내 마음도 아팠다. 조금만 더 기다려줘. 꼭 문 열어줄게! 그렇게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코코 곁에 한 수인이 나타났다.
“넌 처음 보는 친구구나?”
사슴뿔이 난 수인이었다. 아마 수인 마을의 장로였던가? 일전에 마을을 둘러보다가 봐뒀던 수인이었다. 이 수인 이름이 뭐였지?
“나는 디아나야. 넌 이름이 뭐니?”
앙!
“덩치가 작은 걸 보니 아직 어려서 말을 못 하는 건가? 혹시 배고프니?”
앙앙! 헥헥헥-
“조금만 기다려. 내가 창고에서 하나 꺼내줄게.”
디아나는 창고를 살짝 열고 통조림을 하나 꺼냈다. 창고 안에는 사료가 잔뜩 쌓여있었다. 이렇게 많은데 왜 사료를 두고 서로 싸우고 있지?
내 의문과는 별개로 디아나는 친절하게 사료 캔을 먹기 좋게 열고 코코아 앞에 놔두었다. 코코아는 기분 좋은지 꼬리를 마구 흔들며 사료를 먹었다. 코코아. 넌 사료 주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다 좋은 거니? 응? 그런 거야?
디아나는 사료를 먹는 코코아를 느긋하게 바라보며 관찰했다. 아마 수인 중에서 저렇게 생긴 아이가 없으니까 정체가 궁금한 거겠지. 그때 디아나의 뒤로 또 다른 수인 하나가 빠르게 접근했다.
“디아나! 뭐 하는 거야! 내가 사료 먹으면 안 된다고 했잖아!?”
옆머리의 진한 무늬가 인상적인 수인이었다. 디아나에게 화를 내며 통조림을 발로 차버렸다. 통조림을 먹던 중인 코코아는 깜짝 놀라서 도망쳤다. 아니다. 날아간 통조림을 쫓아갔다. 디아나는 다른 수인에게 정신을 뺏겨 코코아를 신경 쓰지 못했고 나만 급하게 코코아를 뒤쫓아갔다.
휘잉- 툭!
날아간 통조림은 엘프가 ‘트럭’이라고 부르는 이동 마차에 안착했다.
앙!
그리고 코코아는 쌓인 물건들을 요리조리 밟으며 폴짝 뛰더니 트럭 위에 올라탔다. 그렇게 올라탄 트럭에는 하필 반품된 사료 상자가 잔뜩 쌓여 있었다. 코코아는 완전히 사료에 정신이 팔렸고 그 사이 트럭이 출발했다.
[아, 안돼! 코코아!!]
멀어지는 트럭을 보며 나는 다급하게 외쳤다. 그리고 트럭을 쫓아가려다가 내가 지금 실체화하지 않은 상태라는 걸 떠올렸다. 잠시 후 나는 트럭에 올라탄 채 코코아를 쓰다듬었다.
앙! 앙!
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사실이 지금만큼은 다행이었다.
트럭은 엘프의 발명품답게 엘프의 도시로 향했다. 이 도시에 들어왔던 기억을 회상하다가 바로 얼마 전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상이든 지하든 다 걸렸지.
앙!
그때 갑자기 코코아가 트럭에서 뛰어내렸다. 올라탈 때처럼 두려움 따윈 없는 매우 용맹한 모습이었다. 당황한 나도 금방 뒤따라 내렸는데 그 잠깐 사이에 코코아가 사라졌다. 능력을 써서 코코아를 찾으려고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지하에서 마력을 차단하던 마력 중화 장치가 지상까지 펼쳐져 있는 모양이었다.
엘프들은 내 정체에 꽤 근접했었다. 만약 여기서 힘을 함부로 썼다간 엘프들에게 들킬지도 모른다. 최대한 능력을 안 쓰고 코코아를 찾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코코아를 어떻게 찾느냐다. 솔직히 자신 없다. 예전에 새끼늑대를 찾을 때도 느꼈지만 난 이런 걸 정말 못한다. 숲이 나 자체였으니 길을 찾아본 적이 없어서인 것 같다.
나는 실체화를 완전히 풀지 않고 모습이 보이지 않는 상태로만 유지했다. 그 상태로 한동안 계속 같은 골목 두 곳을 반복해서 돌아다니며 이 사태를 초래한 엘프들에게 증오심을 키웠다. 내가 어떻게든 그 마력 중화 장치만은 부수고 만다.
얼마나 헤맸을까? 꽤 긴 시간 동안 하염없이 걸었다. 약간의 짜증을 동반한 상태에서 나는 우뚝 걸음을 멈췄다. 골목 끝에서부터 한 무리의 요정들이 걸어와 나를 그대로 뚫고 지나갔다.
그들이 완전히 나를 지나쳐 사라질 때까지 나는 가만히 있었다. 엘프의 도시에서 요정들을 만났기 때문이 아니다. 그 무리 사이에서 오직 한 명만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인간.
분명히 인간이다. 요정처럼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수인처럼 동물귀가 나지 않았다. 엘프처럼 귀가 긴 것도 아니었다. 평범하지만 그렇기에 기억에 남은 모습. 분명히 인간이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어째서 인간이 엘프 도시에? 나는 황급히 뒤돌아가서 인간을 관찰했다. 에린과 다르게 생겼지만 에린의 느낌이 난다. 어딘가 에린을 닮기도 했다. 인간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확실한 인간이다.
어떻게…… 설마 그때 엘프들의 장치가 제대로 작동한 건가? 바로 그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다른 곳에 나타나서 몰랐던 거고…… 지금 같이 있는 아이들은 요정이니까…….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 끝에서 차원 이동 장치가 실패한 이후 본체로 돌아갔을 때 들었던 요정들의 말이 기억났다.
“너도 그거 봤어?”
“응! 역시 나만 본 게 아니네. 아까 그거 뭐였데?”
“몰라! 여왕이랑 사제장이 조사해보고 알려준댔어.”
여왕이랑 사제장. 매일 일하기 싫어 도망 다니는 여왕 에르핀. 항상 내 밑동에서 낮잠을 자는 사제장 네르. 그들이 인간과 함께 있었다. 설마 내가 엘프 도시에 집중하고 있을 때 내 본체 앞에 나타났던 거야? 그래서 몰랐던 거고?
혼란스러웠지만 가까스로 진정하고 그들을 따라다녔다.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상황을 정리했다. 이들은 수인들의 사료 소동을 해결하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것 같았다. 그리고 인간과 요정은 각각 뭔가를 찾고 있었다. 인간은 ‘코코’라는 걸 찾으려고 했고 요정들은…….
“이번 고대 잔나무의 책에는 무슨 내용이 적혀 있을까?”
고대 잔나무의 책을 찾았다.
자, 잠깐 생각해보자.
고대 잔나무 = 내 마력 중계용 나무. 잔나무의 책? 설마 그 안에 넣어두었던 책이면...... 내가 에린과 있었던 일을 적은 일기장인데?
내 일기장을 찾는 거잖아! 그걸 왜? 왜 찾는 건데? 어? 그거 그냥 단순한 일기장이라고. 찾아봐야 아무도 알아볼 수 없는 걸 왜 이제 와 찾는 거야? 어째서…… 는 인간 때문이네!
내 일기는 아무도 알아볼 수 없게 에린이 가르쳐준 글자로 적었다. 숲의 아이들은 독자적인 글자를 썼기 때문에 아무도 인간의 글자를 몰랐다. 즉, 인간의 글로 적어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글을 읽을 수 있는 인간이 나타난 거다.
물론 일기장의 내용을 들키는 게 부끄럽긴 하지만 그게 큰 문제는 아니다. 정작 큰 문제는 일기장에 내 정체에 관한 내용과 이들이 모르는 과거가 적혀 있다는 것이다. 나를 모르게 하기 위해서 에린과의 추억이 깃든 숲을 버리고 여기까지 왔는데 들킬 순 없었다. 그것만은 절대로 용납하지 못한다.
일기는 총 여섯 권을 적었는데 깨어나 보니 내 근처에는 한 권만 남아 있었다. 요정들이 내 일기장을 고대의 유물이라고 하면서 숲 여기저기에 흩어놔 버렸다.
일단은 일기장을 찾는 요정들을 몰래 뒤따라 다니면서 찾아야 할까? 응? 그런데 지금 여기가 어디지?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너무 생각에 잠겼다가 요정들을 놓쳐버렸다.
- 트릭컬,